초등학생이었던 내가 지금의 나를 위로해주는 밤
요즘 자꾸 그 날이 떠오른다.
아마도 요즘 날씨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창문을 열면 스며드는 바람의 온도,
공기의 밀도, 햇살의 질감까지-
희미하지만 분명하게 나를 그 시절로 데려간다.
5월의 끝자락. 봄과 여름 사이,
모든 것이 아직은 맑고 부드럽던 시절.
그래서 나는 5월의 어느날을 기억 속에서 꺼내본다.
그건 그냥 아무 날도 아니었는데,
내 마음 안에서는 언제나 특별한 하루다.
초등학생이던 어느 날, 4교시만 하고 집에 돌아왔다.
방과 후 수업도, 숙제도 없던 평범한 평일.
낮잠을 자고, 오후 두 시쯤 눈을 떴다.
반쯤 열린 창문 사이로 바람이 산들산들 불어들었고,
몸은 개운했고 마음은 가벼웠다.
압박도 계획도 없던 그때,
나는 그저 ‘지금’이라는 시간에
충실히 존재하고 있었다.
거실에는 엄마가 조용히 움직이고 있었고,
그 존재만으로도
나는 사랑받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당장의 10분 뒤가 기대됐고,
내일이 기다려졌고, 인생이 신기하고,
지금 내가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입꼬리가 올라갔다.
나는 정말 행복했다.
이유 없이, 그냥, 살아 있는 것이 기뻤다.
어느새 나는 훌쩍 커서 직장인이 되었다.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출근하고,
비슷한 일을 반복하는 일상.
특별한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닌데,
저녁이면 이유 없이 마음이 무겁고
다음 날 출근 생각에 뒤척이다가 잠을 설칠 때가 많다.
불면의 밤, 어떻게 하면
이 시간을 견딜 수 있을까 고민하다
문득 떠오른 건, 바로 그날의 기억이었다.
그래서 요즘 나는 밤마다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초등학생이야, 내일은 학교를 가.”
그 말을 되뇌다 보면, 어쩐지 마음이 조금 풀리고,
그때 그 내가 다시 살아나는 것 같다.
물론 나는 다시는 초등학생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 시절을 이제는 사진과 기억으로만
추억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매년 이맘때,
5월이 되면-
그 낮잠에서 막 깨어났을 때 맡았던 공기,
살짝 선선했던 바람이 다시 내 곁에 온다.
나는 변했고, 세상도 바뀌었지만
그날의 바람과 공기만은 매년 다시 돌아온다.
그래서인지 이 시기가 되면
나는 다시 초등학생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잠시라도 그때의 내가 되는 것 같다.
그날의 나는, 지금 생각하면
정말 생명을 껴안고 있던 시간이었다.
모든 것이 이유 없이 충만했고, 매일이 기대였고,
그저 살아 있는 것만으로 충분했으니까.
앞으로도 이 계절이 올 때마다
나는 또 그날을 떠올릴 것이다.
세상이 아무리 바빠도, 나이가 더 들어도,
내 안의 어리고 투명했던 내가
그 바람을 타고 조용히 다시 돌아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