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불행 앞에서, 나는 안도했다

착하지 않은 마음을 인정하기로 했다

by 이서


내겐 아주 가까운 친구가 있다.

취업도 빨랐고, 집도 부유했고,

좋은 남자를 일찍 만나 결혼했고,

사랑스러운 아이까지 가졌다.


그 친구의 삶을 보며

‘아, 이게 사람들이 말하는 안정된 인생이구나’ 싶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부러웠다.


나는 늘 한 박자 늦는 사람이었다.

중견기업에 먼저 들어가 실력을 쌓아 대기업으로 옮겼고,

우리 집은 빠듯하진 않지만 결코 여유롭지도 않았다.

남자친구는 있지만,

결혼이라는 단어를 붙이기엔 어딘가 애매했다.


그 친구가 둘째를 고민할 때

나는 아직 첫 단추조차 제대로 끼우지 못한 기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친구에게서 믿기 힘든 이야기를 들었다.

남편이 암 말기 진단을 받았고,

의사가 말한 시간은 2년이라는 말이었다.


아이를 위해 강남 입성을 준비하고,

청약에 당첨돼 몇 년 뒤 입주할 집까지 계획한 사람에게

‘남편의 부재’는

아예 상상조차 해보지 않은 미래였을 것이다.


아이를 위해 쌓아 올린 모든 계획이

아이의 아버지가 사라질 가능성 앞에서는

너무도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걸

그제야 나는 실감했다.




그리고 여기서부터가

이 글을 쓰게 된 진짜 이유다.


나는 슬펐고, 안쓰러웠다.

그런데 동시에—

안도했다.


이 감정을 인정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결혼을 빨리 한 것도,

모든 걸 일찍 이룬 것도

결국 인생을 안전하게 만들어주지는 않는다는 사실에

나는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그래, 인생은 공평하지.’

‘그러니까 내가 이렇게 늦어도 괜찮은 거야.’


그런 생각이 스쳤을 때

나는 내가 너무 비열한 사람 같아

스스로를 견딜 수가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이 감정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걸.


우리는 남의 불행을 바라보며

그 사람을 불쌍해하는 동시에,

자기 인생을 잠시 정당화한다.


그건 악의라기보다

살아남기 위한 감정에 가깝다.


비교 속에서 흔들리지 않기 위해,

‘아직 나는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주기 위한 마음.




어쩌면 우리는 모두

남의 불행 앞에서

아주 잠깐의 안도를 느껴본 적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걸 인정하지 않으려고

착한 말로 덮어두었을 뿐.


나는 이 비열한 마음을

없던 척하지 않기로 했다.

미화하지도, 정당화하지도 않으면서

그냥 그대로 인정해두기로 했다.


이 감정까지 포함해서

그게 지금의 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