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오는데, 마음이 전혀 설레지 않았다

그날 나는 내가 어른이 되었다는 걸 알았다

by 이서


오늘은 눈이 왔다.

긴 설 연휴가 끝난 아침, 출근을 위해 버스 정류장에 서 있었다.

눈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이유도 없이 펑펑 쏟아졌다.


그런데 이상했다.

분명 예쁜 장면인데, 마음이 잘 움직이지 않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눈이 이렇게 예뻤던 적이 있었나?


곧바로 오래전 장면 하나가 떠올랐다.

교환학생 시절, 캐나다에서 맞았던 크리스마스.

그날도 오늘처럼 눈은 멈추지 않고 내렸다.

거리는 온통 하얗게 잠겨 있었고, 사람 그림자 하나 없었다.


조용한 거리 한가운데 서서

‘지금 내가 캐나다에 있구나’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괜히 숨을 고르던 순간.


마치 동화 속에 들어온 것 같았다.


그때의 나는

젖은 신발을 걱정하지 않았고,

출근 시간을 계산하지도 않았으며,

눈이 오면 그저 눈을 보고 있었다.


지금의 나는 다르다.

눈을 보는 대신 지각 여부를 계산하고,

옷이 젖을까 먼저 피하고,

이 순간을 오래 붙잡지 않는다.


어른이 된다는 건

눈을 싫어하게 되는 게 아니라,

눈을 즐길 여유를 잃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말한다.

어른이 되면 행복할 일이 줄어든다고.

하지만 요즘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행복이 사라진 게 아니라

우리가 행복을 미루는 데 너무 능숙해졌을 뿐이다.


일이 끝나면,

여유가 생기면,

조금만 더 안정되면—

그때 느끼겠다고.


삼십여 년을 살아보니 알겠다.

행복은 늘 그 자리에 있었다.

다만 우리는

젖은 옷과 책임과 내일을 이유로

자꾸 고개를 돌렸을 뿐이다.


그래서 올해 남은 겨울에는

눈이 오면 잠시 멈추려고 한다.

가던 길에서 멈춰 서서

괜히 하늘을 한 번 더 올려다보고,

마음속으로라도

눈사람 하나쯤 만들어볼 생각이다.


옷이 조금 젖어도 괜찮다.

그대로 집에 들어가

엄마의 잔소리를 듣던 유년의 나를 떠올리며

웃을 수 있다면.


눈은 예전과 똑같이 오고 있다.

달라진 건,

그걸 바라보는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