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기억하는 어떠한 장면은 엄마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다. 홈베이킹을 배울 때 우리 선생님께서 엄마가 빵을 구워주면 아이들의 기억에 오래 남는다고 말씀을 해주셨다. 실제로는 더 가슴에 와닿는 따뜻한 문장이었는데 기억이 안 난다. 아이 낳으면서 뇌도 낳는다고 하는 항간의 말이 딱 이럴 때 들어맞는다. 어쨌든 선생님의 그 말씀을 들었을 때 매우 고개가 끄덕여졌다. 나도 어린 시절 엄마가 밥 해준 건 평범한 기억에 머무르지만 찐빵을 만들어주고 호떡을 구워주던 기억만큼은 몇 장면 안 되더라도 조금 더 특별하게 남아있기 때문이다. 엄마가 간식을 만들어주는 일상은 좀 더 몽실몽실한 기억으로 저장되는 듯하다.
홈베이킹을 배운 덕분으로 어쩌다 첫째를 낳고 참 쉽게 이것저것 만들어 먹여보며 키웠다. 그러다가 열심히 둘째를 준비하고 낳고 키우는 와중에 홈베이킹을 멈추고 있었다. 사실은 좁은 집과 비좁은 주방으로 이사하게 된 이유가 더 큰 것 같지만. 임신 7개월 차에 지금의 집으로 이사를 해야 했고 주방이 좁아져서 움직이기가 불편하니까 필수적인 것만 겨우 했다. 하필 나의 이사 때마다 전세난은 반복되고 아이 방학에 맞춰 이사날짜를 잡다 보면 이삿짐 업체는 대충 일하고 간다. 비싼 업체 쓸까 싶다가도 또 이사해야 하는 집이라 그냥 2년 살자 하고 말았다. 원래도 짐이 많은데 집과 주방이 더 작은 곳으로 옮겨오고 내 몸은 배가 불러서 더 커지고 후아후아. 더 이상의 긴 설명은 생략하자.
이러한 어른의 사정으로 엄마의 빵을 못 먹게 된 어쩌다 첫째. 이 어린이가 아주 오랜만에 부탁한 것이 블루베리 크럼블이다. 열심히 둘째가 어느 정도 크고 안정이 되어 보였는지 엄마가 빵을 만들 수 있을 여유가 있어 보였나 보다. 어린이들의 상황판단이란 것은 이렇게 가끔 눈물이 나오게 만든다. 엄마한테 먹고 싶다고 말하기까지 몇 번 참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라 바로 만들어주겠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인 것은 나의 냉장고 냉동실에는 늘 블루베리가 들어있기 때문에 내 손과 발만 조금 부지런 떨면 금방 만들어 줄 수 있는 메뉴라는 것.
시절이 좋아져서 블루베리 구하기가 쉽다. 수입산 생블루베리가 동네 과일가게나 마트에만 가도 늘 진열되어 있고 배달로 냉동 블루베리도 받을 수 있다. 알이 크고 굵은 것을 써도 되지만 냉동 유기농 블루베리를 주문하면 알이 자잘하고 맛이 진한 것을 먹어볼 수 있다. 언젠가부터 생긴 모양보다는 본질을 우선시하고 있다. 아마 엄마라서 더 그렇게 된 건 아닌지. 게다가 가격도 냉동 쪽이 좋다. 생블루베리가 125g 한팩에 4-7000원인데 냉동 블루베리는 1kg에 10000원선이다. 어차피 구워서 잼처럼 되는 것이니 냉동 블루베리 잔뜩 넣어 만들자. 이마트에서 주문했던 냉동 와일드블루베리 품종은 알이 자잘하고 맛이 진해서 블루베리크럼블타르트를 만들 때 더 좋았다.
어쩌다 첫째는 블루베리파이라고 기억하는데 파이지를 반죽하고 밀고 어쩌고 저쩌고 만드는 것보단 크럼블 타르트로 만드는 게 쉬워서 크럼블로 만들어줬다. 대부분의 크럼블 레시피는 밀가루 박력분으로 만들지만 나는 쌀가루 박력분으로 만든다. 밀가루의 글루텐이 장벽에 달라붙어 일으키는 문제를 공부하고 나니 피할 수 있는 밀가루는 피하고 싶다. 내가 배운 원조 레시피도 밀가루였지만 몇 번의 시도 끝에 내맘대로버전 쌀가루레시피가 나왔다.
1. 아몬드가루와 쌀가루, 설탕, 소금을 잘 섞어주고 그 위에 버터를 넣어 자르듯이 반죽한다
2. 버터가 고루 섞이도록 잘 섞어주고 파이틀에 반죽의 90%만 넣어 손으로 눌러가며 모양을 만들어준다
3. 2 위에 블루베리를 골고루 얹고 남은 반죽 10%를 덮어준다
4. 인덕션 팬요리 180도 35분 구워준다
5. 구워진 파이는 식힌 다음에 파이틀에서 분리한다
싱긋 - 쌀가루 블루베리크럼블 베이킹 과정
싱긋 - 쌀가루 블루베리크럼블 베이킹
쌀가루가 버터를 많이 흡수하기 때문에 상당히 많은 버터를 넣어야 한다. 내 경험상 밀가루 베이킹과 달리 쌀가루 베이킹은 오일류를 아끼지 말고 넣어줘야 했다. 단 맛을 많이 좋아하지 않는 내 입맛의 레시피라서 설탕의 양은 여기 적혀 있는 것에서 더 늘리는 것이 가능하지만 버터의 양은 줄이지 않는 것이 좋다. 버터가 줄어들면 파이틀에서 떼어내기도 힘들어진다. 애써서 만들었는데 파이틀에서 분리하다가 깨지는 경험이란 너무 슬픈 일이니까 나만 겪는 걸로 하자. 이 날은 고메버터 앨엔비르를 120그람이나 넣었다. 맛이 없을 수가 없는 레시피랄까. 버터의 특성이 있어서 처음 구워져 나오면 말랑말랑 덜 익은 감이 있는데 식히면 단단해진다.
만들어주길 잘했다. 즐거운 표정으로 행복해한다.
싱긋 - 블루베리크럼블을 받고 신난 어린이
먹고 싶다며 요청했던 메뉴라서 완성될 때까지 조바심 내며 기다린 어린이다. 식혀서 단단할 때 먹어야 단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데 기다리다 몸살 날 것 같은 어린이를 위해 덜 식어서 따뜻할 때 꺼내줬다. 따뜻할 때 먹는 크럼블도 맛있다. 바삭하진 않지만.
베이킹이라는 것이 번거롭고 어려워 보이긴 하지만 만드는 그 순간 나의 집중력이 쌓이는 밀도와 완성 후의 향기와 맛, 그리고 아이가 기뻐하며 먹는 표정과 추억까지 따라오는 좋은 수단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참 좋은 일이다. 좀 더 자주 만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