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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서 C Jun 22. 2020

드라마 수업을 들으며 느낀 점

언젠간 퇴사하겠지


드라마 작법 수업을 다니고 있다.

매주 수요일, 수업에 늦지 않기 위해 근무시간에 더 정신없이 움직인다. 가까스로 퇴근을 하고 신촌행 버스에 몸을 싣고 잠시 멍을 때리다 보면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이 짓을 하고 있는지 너털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술이나 마시고 미팅이나 하러 왔던 이 신촌에서 뭔가 배운다는 것이 아직도 어색하다. 하지만 이왕 돈을 냈으니 뽕을 뽑겠다는 일념으로 학원까지 축지법을 쓰듯 걸어 아슬아슬하게 수업 시작 전 도착한다.


수업은 두 시간 동안 진행된다. 꽤나 긴 시간이지만 헬스장은 도착하기 전까지가 가장 힘들다는 말처럼 두 시간은 금세 흘러간다.


선생님은 어릴 쩍 내가 즐겨보던 드라마의 실제 작가다. 때문에 아직까지는 신기를 넘어 신비한 사람으로 보인다. 그녀는 드라마 작가답게 상황에 몰입을 잘하고 간혹 매력적인 문장들을 내뱉곤 해서 나는 긴장을 놓지 않고 그녀의 한마디 한마디를 옮겨 적곤 한다.


꼭 드라마가 아니더라도 직업적 글쓰기로 성공한 사람을 대면하는 일은 신기한 경험이다. 수강 횟수가 늘어갈 때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드라마 공모전에 제출했던 내 쓰레기 같은 시놉이나 기획안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부끄러워지고 있다.


수강 첫날, 선생님은 학생들의 수준을  파악할 의도로 이 분야 수업을 들어본 적이 있는지 물었다. 내 기수에는 작가협회나 방송사에서 운영하는 교육과정을 이수한 사람들의 비율이 꽤 높았다. 씬을 구성하는 것도 다 기술인 드라마와 그것을 배우려는 준프로들 사이에서 나는 배움이 전무한 수준인 네 명의 ‘백지’ 중 하나가 되었다. 시나리오 작법 책을 몇 번 읽은 것뿐인 나는 이 과정 말미에 진행될 합평에서 자존심이 너덜 해지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


사실 이 수업을 본격적으로 드라마 작가가 되고 싶어서 듣게 된 것은 아니다. 수강신청이 치열한 수업이라기에 승부욕이 생기기도 했고, 그저 지루한 일상에 활력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어쩐지 수업이 없는 날은 더 우울하다. 합평에 내놓을 시놉이 아득하게 느껴지기 때문도 아니고, 회사 밖에 이렇게 풍부하고도 양질의 배울 것이 많다는 것을 알고도 발 묶여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직장인으로서의 내게 한 번씩 강한 현타가 몰려오기 때문이다.


다 그만두고 떠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꼭 회사를 다니지 않더라도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보고 있으니 어떻게 퇴사를 준비해야 할 것인지를 더 고민하게 되는 요즘이다.


회사원이 가장 피로하다는 수요일, 나는 온갖 뿌듯함과 깨달음과 또 온갖 고민들을 안고 어두컴컴한 시간 강의실을 떠난다. 그렇게 녹초가 된 몸으로 집에 돌아와 밤 11시가 넘어 식사를 하고 부푼 배를 안고 잠든다. 힘을 내자고 먹은 밥인데 소화할 힘이 부족해 숙면은 글렀다. 그리고 다음날 얼굴은 퉁퉁 부어 아주 볼만 하다.


코로나 탓에 몇 주 많이 수강하진 못했지만, 이 체력부터 딸리는 일상을 계속하다 보면 나의 몇 년 후 일상은 절대 오늘과 같지 않으리란 드라마적 전개를 믿어보며 또 하루를 마무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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