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장기획

3년 연속 반장기

by Lahye

올해도 반장

아들은 반장을 선출하기 시작하는 2학년부터 4학년인 올해까지 3년 연속 반장이다. 그것도 모두 1학기 반장. 이는 우연은 아니다. 기획과 실행이 맞물린 결과다. 기획은 나(엄마), 실행은 아들.


나는 직장에서 27년째 일하고 있다.

그 긴 시간 동안 명확히 깨달은 건, '기획이 전부'라는 사실이다. 목표가 있다면 컨셉을 잡고, 사람들의 마음에 명확히 새길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이건 직장에서만 필요한 능력이 아니다.


비록 집에서는 음식도, 집안일도 부족하기 그지없는 엄마지만, 이런 ‘컨셉설정’과 ‘행사 기획’만큼은 늘 해 오던 것이다. 그래서 초등학교 반장선거는 나에게는 또 하나의 ‘프로젝트’로 인식되었다.



2학년 <오로나민씨 춤>

첫 반장 선거를 앞두고 있는 아이에게 나는 말했다.

“친구들한테 인상을 깊이 남기려면, 말로만 하지 말고 뭔가 확실한 걸 보여줘야 해”

그래서 아들은 촐랑거리는 춤을 택했다.


반장선거에 나간 아들은 “우리반에 웃음을 주는 비타민이 되겠습니다!”라고 공약 한 마디를 던지고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오로나민씨~♬” 노래를 쌩으로 부르며 팔과 다리를 휘두르며 춤을 췄다. 순식간에 반 전체는 웃음바다가 됐고, 아들은 생애 첫 반장이 되었다.



3학년 <멋쟁이 토마토, 개사 버전>

다음 해 반장선거가 있다길래 나는 한 단계 더 ‘기획안’을 발전시켰다.

“올해는 친구들이 잘 아는 노래에 개사를 해서 나가는건 어때?"

아들과 나는 둘이 앉아 노래가사를 함께 바꾸었다.


알록달록 멋진 몸매에

빠알간 옷을 입고

새콤달콤 향기 풍기는

멋쟁이 토마토! (토마토!)

나~는~야! 반장 될 거야~

얘~들~아! 한 표 뽑아 줘~

얘~들~아! 반장 시켜 줘~

반을 위해 봉사할께

반장선거에 나가기 전에 아들은 준비 해 간 토마토 옷과 모자를 쓰고 친구들 앞에 섰다. 그 순간, 반 전체가 ‘토마토 반장’에게 마음을 빼앗겼다.



4학년 <오징어게임 버전 연출>

4학년인 올해 아들은 본인이 '알아서 한다'고 했다. 궁금해서 물었더니 “엄마, 제프프라는 유튜버의 오징어게임 성기훈(이정재) 퍼포먼스로 할거야.”

러분, 무슨 일이 생겨도 얼~음~!

말을 믿으셔야 합니다

라는 멘트와 제스츄어를 선보이면서 알아서 할거니 걱정말라고 했다.

달리 내가 할 일은 없었지만, 분위기의 연출에 주인공 성기훈이 입었던 초록색 트레이닝복이 딱일듯 하여 주문해 주꾸마 했다. 등 뒤에는 ‘반장될 인물’이라는 문구를 프린팅하고.

아들은 성기훈의 포스를 그대로 흉내낸 첫 스타트는 반아이들을 등지고 서서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하고 돌아서는 액션. 움직임있는 친구를 향해 "김oo, 탈락!"하며 손가락 총을 쏘며 이미 관객이 된 친구들의 집중을 한 몸에 받았다는 아들. 반 전체는 몰입감있는 폭소로 물들었다.



반장기획

아들의 반장기획에는 대단한 정책공약이나 숫자는 없다. 단지 즐거움과 유쾌함이다. 아직은 초등학교 4학년정도라 약발이 먹히는 기획이다.

직장에서 기획안을 만들 듯, 컨셉을 정하고, 거기에 맞춰 대사·노래에 춤연출까지 세팅하는 일. 그러나 기획이 아무리 멋져도 당사자의 실행이 따라주지 않으면 아무 의미없다. 아들이 주도적 실행으로 완성되어가는 이 과정이 아주 흥미롭다. 처음에는 나의 기획비중이 높았는데 이제는 기획자도 연출자도 주인공도 모두 아들이다. 아주 바람직하다.



자기 인생무대의 주인공

일을 핑계로 음식이나 집안일은 나몰라라 하는 부족한 엄마다. 그렇지만 엄마도 엄마가 잘하는 방식으로 아이를 돕는 것에 자족한다. 다 잘할 순 없다. 그럴 욕심도 없다.

그리고 나는 기대한다. 이런 반장출마의 경험으로 아들이 자신의 인생무대에서 자신이 원하는 목표를 위한 기획과 연출, 실행을 잘 하며 살기를. 결과는 성취되어도 좋고 적절한 좌절이 있어도 좋다. 그렇게 도전하고 성장하는 인생이기를 엄마의 마음으로 응원한다.




덧붙임) 그런데 둘째인 딸(초1)은 '절대' 반장선거에는 나가지 않겠다고 한다. 아이들은 그렇게 자신의 모습대로 큰다.



<대문사진 : 언스플래시 markus-winkl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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