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쑥날쑥 개학 시간표 전쟁
엄마는 초등 스케쥴 매니저
개학날이라는 변수
"엄마, 개학날이라 4교시만 하고 집에 왔어"
"뭐? 그럼 ○○이(둘째)는?"
"모르겠는데..."
8월 중순의 목요일. 애매한 요일로 방학이 끝나고 맞이한 개학날.
'1일'도 아니고 '월요일'도 아니었다.
평일 학기 시간표는 관계자가 아니고는 일관성을 예측하기 힘들다.
*4교시 / 점심 먹고 / 하교
*4교시 / 점심 먹고 / 5교시수업 하고 / 하교
*단축5교시수업 / 점심 먹고 / 하교
내 머릿 속은 시간표를 보지 않고서는 도무지 아이의 동선을 그릴 수가 없다.
내가 예민한 이유는 단순히 아이 귀가 시간이 궁금해서가 아니다. 그 시간에 따라 공백을 연결해야하는 다음 스케쥴이 줄줄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아직은 알아서 자신의 상황을 감당하기 어려운 1학년, 4학년. 그 공백을 채우는 사람은 70대 중반의 할머니시다.
폭염 속 온몸의 신경통과 어지러움을 감내하시고 금쪽이 손주들 챙기느라 안 가셔도 될 길을 몇 번씩 다녀오시는 할머니. 그 모습이 마음에 얹혀있기 때문이다.
갑작스런 시간표 변경의 혼란
원래대로라면 개학날 4학년 아들은 5교시 수업 후 하교길에 태권도 학원으로 걸어가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4교시만 하고 끝이라니!
문제는 1학년 딸이다. 방과후 수업까지 끝나고 나왔다면 태권도 학원의 차량을 기다려야하는 시간이 무려 50분이나 남아 버린 것이다.
폭염 속 아이 구하기
그럼 이 더운 날에 딸은 방과후 교실을 나와서 어디에 있단 말인가. 설마 차량을 기다리는 후문에? 날씨가 장난이 아닌데.
급한 마음으로 딸에게 전화를 건다. 엄마의 조급한 마음과 달리 한참을 울리더니 들리는 딸아이의 목소리.
"○○아, 어디야?"
"나? 태권도 차 기다리고 있지"
"차량시간이 50분이나 남았는데"
"몰라.."
"덥지 않아?"
"더워!"
집에 가기도, 태권도 차량을 기다리기도 어정쩡한 시간이라 마음이 갈팡질팡이다.
"오빠한테 전화해서 바로 가라고 할 테니까 15분만 기다려!"
"응"
정확한 아들의 행동체계
다시 아들에게 급히 전화를 걸었다.
“지금 동생이 땡볕에 있어.
학교까지 가서, 태권도 학원 같이 걸어가!”
그런데 녀석은 뜻밖에 태연했다.
“엄마, 내가 좀 정확한 사람이라서 그런데…
태권도 관장님께
내가 일찍 가는거랑
동생이 차량 안 타는 것
미리 말씀드려서 하락맡으면 움직일게”
아들은 단호했다.
뭐? 이 와중에 관장님 보고까지?
언젠가 녀석이 했던 말이 스친다.
‘태권도 학원에서는 관장님은 대통령이고,
사범님은 국무총리, 우리들은 국민이야’라고 했다.
아들의 ‘사회 체계’ 안에서는 모든 일이 그럴듯하게 질서를 갖춘다. 27년 조직생활 한 나도 놀라게하는 보고능력이다.
결국 나는 태권도 관장님께 전화를 드려 일정을 확인 받았고, 그제서야 아들은 출발했다.
학교 후문에서 폭염의 한 중간에 있던 딸과 무사히 해후한 아들의 후속 보고를 들으며 한숨을 돌린다.
전화기를 붙들고 동동거리던 일을 마무리되고 다시 직장업무로 마음이 돌아온다. 개학날의 스케쥴은 이렇게 일단락.
끝없는 스케줄 매니징의 굴레
하지만 진짜 전쟁은 집에 돌아와서 시작됐다. 9월부터는 학원 스케줄도 바뀌고, 방과후도 한 주 공백이 있을수 있다. 8월 잔여 일정과 9월 신규 일정이 따로 계획되어야 하는 상황.
갈수록 가는 귀가 먹고 자꾸 깜빡깜빡 하시는 할머니께 다시 설명 드리는 것도 여간 일이 아니다. 결국 아이들을 앉혀놓고 말했다.
“이제 할머니가 다 기억 못하시니까, 너희가 너네 일정을 기억하고 알아서 움직여야 해.”
“알았어!”
대답하는 딸아이를 보니, 부쩍 자란 느낌이 든다. 엄마도 좀 믿어지기도 한다.
엑셀없는 엑셀러, 스케쥴 엄마
직장에서도 늘 스케쥴을 짜는 건 일상이다. 그런데 집에서도 다르지 않다. 오히려 내가 겪지 못하는 시간대에 벌어지는 현장감 없는 시간표를 짜느라 좌충우돌 '스케쥴 매니저'로 활동 중이다.
아이들의 하루가 흘러가는 흐름을 맞추는 일, 그 아이들의 빈 시간과 자리를 채워주는 일. 개별 일정대로 들쑥날쑥한 시간을 엄마는 오늘도 표 하나 없는 머릿 속 엑셀 시트를 굴려가며 그리고 또 그린다.
머지않아 아이들은 스스로 자신의 스케줄을 짜고, 책임질 것이다. 그 때까지 엄마는 아이들의 하루를 안전하게 이어주기 위한 엎치락뒤치락 진땀 일상을 겪어내는 중이다.
<대문사진 출처 :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