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설렘댁 Apr 24. 2021

정신없는 아기 엄마, 나뿐만이 아닌 것 같은데? - 2

천방지축 어리둥절 빙글빙글 돌아가는 양육자의 하루

남편이 냉면을 먹는 동안, 커피가 마시고 싶어서 정수기로 갔다. 뜨거운 물을 따르고 스타벅스 비아를 탈탈 털어 넣고, 휘휘 저은 다음에 차가운 물 넣고, 얼음을 넣어서 더 시원하게 했다. '맞다, 남편이 아인슈패너 마시고 싶다고 해서 휘핑크림 샀지.' 갑자기 아인슈패너가 만들어보고 싶어 졌다. 밥그릇에 휘핑크림 스프레이를 치익 뿌리고, 종이팩에 들어있는 휘핑크림을 적당히 섞어서 휘휘 저었다. '그래그래, 이 비율이야.' 아메리카노에 사악- 올리니 카페에서 마시던 아인슈패너 그대로다! 역시 난 멋져! 하면서 사진을 찍었다.



남편에게 마셔보라 하니, "오, 정말 아인슈패너 같네." 하며 감탄한다. 그러고 나서 말한다. "그거 알지? 우리 곧 튼튼영어 하러 가야 해."


아, 맞다. 30분밖에 안 남았다.


남편에게 먼저 씻으라 하고 아이스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아이가 말한다. "엄마, 방울토마토가, 옷에, 묻었어요." 정말 방울토마토 국물과 씨앗이 옷이며 식탁이며 온갖 군데에 튀었다. "와~ 대단하네~ 어디까지 튄 거야?"하고 웃으면서 옷을 갈아입혔다. 머리카락에도 씨앗이 있다니, 도대체 어떻게 튄 걸까? 생각하면서, 아이에게 튼튼영어 영상을 틀어주었다. 아이가 세 편을 보는 동안 남은 커피를 천천히 마셨다. 왠지 콘서타에 커피까지 마셔서 더 정신이 없는 걸까? 싶어서 그만 마시고 찬물을 마셨다.


남편이 다 씻고 옷 입고 나와서, 아이에게 신발을 신기고 짐을 챙겨서 출발했다. 오늘 수업에는 남편이 들어가기로 해서, 내가 운전을 했다. 빙글빙글 주차장은 왜 이렇게 깊나. 열심히 운전하면서 가는데 오늘따라 차까지 막혀서 초조하다. 늦을 것 같아서 불안하다. 그 와중에 아이가 뒤에서 "노래 틀어주세요!!"하고 소리친다. 노래를 틀어주고, 시간 체크를 하고, 운전을 하는데, 아이가 "다른 노래 틀어주세요!" 한다. 남편이 대신 틀어주는데도 정신이 하나도 없다.


늦기 일보직전이라 정신없이 내렸다. 남편이랑 아이를 데리고 튼튼영어 수업에 가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아이가 주저앉고 바닥을 만지고 난리가 났다. "안돼, 안돼, 바닥 만지면 지지야!!" 소리치면서 센터로 종종거리며 갔다. 센터에 도착해서는 열 체크하고, QR 체크인하고, 아이에게 인사하고, 한숨 돌린다. 아이가 나올 때까지 그럼 근처에 마트나 들러볼까?


지하에 있는 마트로 갔다. 들어가는 길에 꽃 가게가 있어서 꽃을 구경하다가 식품 코너로 갔다. 아이가 아이 어린이집 친구 엄마가 주는 뻥튀기를 너무 좋아해서, 마트에서 뻥튀기를 한 봉지 사서 나왔다. 나오는 길에 꽃 반다발도 샀다. 그러고 보니 이 근처에 괜찮은 반찬가게가 있다고 했는데? 뻥튀기를 들고 딸랑딸랑 반찬 가게로 갔다. 깔끔하고 너무 괜찮다. 회원 가입도 하고, 장을 본 다음에 차로 갈까 싶었는데 시간이 좀 남았네? 근처 빵집에 들러서 곡물식빵도 샀다. 빵집에 앉아서 핸드폰으로 게임과 SNS를 하고 있는데, 수업 끝났다고 전화가 왔다. 주차 등록을 못하고 나왔으니, 대신 센터 실장님에게 전화해달라고 한다. 실장님에게 전화를 걸어 주차 등록을 요청드리는데, 실장님도 나만큼 정신이 없으신 것 같다. 한참을 통화하고 주차 등록이 완료되었다.


운전해서 집에 왔는데, 아이가 뻥튀기를 보고 너무 기뻐했다. "뻥튀기, 먹고, 싶어요!" 해서, "집에 가서 손 씻고 먹는 거야~" 했다. 이 두 문장을 한 다섯 번쯤 반복하고 집에 도착했다. 손도 안 씻고 뻥튀기를 먹겠다는 아이를 남편이 끌고 화장실로 데려갔다. 남편이 아이 손 씻기는 사이에 장본 것들을 정리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남편이 아이에게 뻥튀기를 먹이는 동안, 간식으로 무지개떡을 전자레인지에 데웠다. 다 데운 떡을 아이에게 먹여달라고 남편에게 부탁한 뒤, 아까 마트에서 사 온 꽃을 정리해서 화병에 꽂았다. 너무 아름답다. 역시 아름다운 것은 볼 때마다 마음이 평화로워지는 것 같다. 예쁘게 사진을 찍어서 인스타에 올렸다.


사실 화병까지만 아름답고, 거실은 내 정신머리처럼 난장판이었다.





여기까지가 오후 3시까지였다.


사실 이 뒤로도 쓰고 싶은 엄청나게 긴 하루가 남아있었다.


패턴은 똑같다. 해야 할 집안일들이 쌓여있고, 남편과 그걸 하나하나 처리해가면서, 동시에 아이가 부르는 말에 대답해주고, 중간중간 같이 논의해야 할 일도 많고. 그러다 보면 물 마실 시간도 없고, 화장실 갈 시간도 없다. 사실 회사 일이 덜 정신없는 것 같다. 아이와 하루 종일 함께하며 집안일을 하는 것은 너무나 정신없는 일이다. 심지어 청소연구소 서비스를 일주일에 두 번이나 불러서, 많은 부분 가사를 외주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야 할 것도 많고, 철되면 옷도 갈아줘야지, 교육도 신경 써야지, 먹고 입히는 것만 해도, 아...!



성인 여성들 중에서도 유자녀 기혼 여성들이, 일과 육아를 동시에 다루다가 ADHD임을 의심하며 병원에 찾는다는 것은 당연한 현상인 것 같다. 

아이를 키우는 지금, 내 인생 어느 때보다도 더, 훨씬 더, 정신없다. 정말 정신없음의 극치이다. 


한 가지 생각을 마무리하거나 한 가지 행동을 마무리하기 전에,
아이는 시도 때도 없이, 전혀 눈치 보지 않고 나의 생각과 행동을 멈추게 하니까!
당연한 일이다. 아이는 어른이 아니니까.
아이덕분에 내가 ADHD라는 걸 이제라도 발견하게 되어서 감사하다 생각해야 하는 걸까.


인생에서 가장 정신없는 순간에서,
그동안 없었던 정신을 그러모을 수 있는 약을 처방받게 되었다.

작가의 이전글 정신없는 아기 엄마, 나뿐만이 아닌 것 같은데? -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