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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담 Oct 20. 2022

대전 에코페미니즘커뮤니티 피스어스를 만나다 vol.1

이젠 차가운 공기가 온 숨 가득히 느껴지던 오후, 분홍빛 노을과 그와 비슷한 색을 띄는 가로수들을 지나쳐 도착한 공간에서 임유진 피스어스 대표를 만났다. 계절과 맞닿은 듯 포근한 색감으로 가득한 차림과 빵빵한 백팩과 종이가방이 그가 어떤 사람인지 더욱 궁금하게 했다. 그것들을 하나씩 꺼내다보면 그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세계에서 사는지 알 수 있을 터이다. 이번 인터뷰는 그렇게 하나씩 그와 그가 속한 에코 페미니즘 커뮤니티 '피스어스(Peace Earth)'에 대해 알아간다. 우리가 딛고 있는 땅과 자연에 집중하고,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무수한 가치들 중 무엇을 택하고 삶의 중심으로 가질 것인가를 고민하였던 시간을 공유한다.



여담: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유진: 안녕하세요, 저는 피스어스 대표를 맡고 있는 임유진 이라고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유진솔’이라는 이름으로 노래 짓고 부르면서 살고 있습니다,


여담: 피스어스는 어떤 곳인가요? 이름의 뜻은 무엇이구요?


유진: 피스어스는 대전 지역에서 ‘에코 페미니즘 커뮤니티’를 표방하면서 이런저런 활동을 하고 있는 단체에요. 에코 페미니즘이란 단어가 관념적으로는 생소할 수 있겠지만, 여성들이 모여 자연, 그리고 서로를 돌보는 생활을 하는 공동체라고 생각해주시면 될 것 같아요.


여담: 커뮤니티 소개를 보면 “여성, 생태, 예술이 유보되지 않는 삶”이라는 표현이 있던데, 이러한 키워드를 중심으로 활동하고자 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키워드 간의 연관성도 궁금합니다.


유진: 개인적인 이야기에서 비롯된 슬로건인데요, 3년 전 설리의 죽음을 목격하고서 굉장한 분노가 차 올랐고, 그게 기폭제가 되어 여성이 차별 및 착취당하는 현실을 더 이상 방관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어요.

동시에 그 즈음부터 비건 실천을 해왔는데요, 인간 중심 사회에서 비인간 존재들이 차별당하고 착취당하는 현실을 보며 분노와 잔잔한 우울감이 있었어요.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이 차별당하는 기제와 인간 중심 사회에서 비인간 존재가 차별당하는 기제가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라는 존재가 유보되지 않으려면 '여성주의', '생태주의'적 신념을 지켜야 할 것 같았어요. 동시에 이 신념이 일상 속에서 나를 해치지 않는 즐거운 ‘실천’으로 이어지길 원했는데, 그것이 ‘예술’ 이라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여성, 생태, 예술 이 세 가지 키워드가 연결되고 통합되었습니다.

더불어 작년 즈음 [모농숲]과 [뜨거운 뜨개방] 을 진행하면서 올해 초에 피스어스 대표를 맡았어요. 자연스럽게 개인의 슬로건이었던  ‘여성 생태 예술을 유보하지 않는 삶’ 이 피스어스가 표방하는 가치인 '에코페미니즘'으로 수렴되고 있어요.


여담: 피스어스는 원래 존재했고 유진님이 올해부터 대표를 맡으신건가요?


유진: 피스어스는 작년부터(2021) 있었고, 은영상잠을 운영하는 나현, 선아, 그리고 오토라는 문화예술 집단의 대표인 은성, 헤이즐, 거기에 저까지 해서 활동을 이어오다가 올해 초에 단체로 만들어졌어요. 그러면서 제가 대표를 맡은 거죠.


여담: '여성, 생태, 예술이 유보되지 않는 삶'이라는 게 유진님의 개인적 가치관이었지만 현재는 피스어스라는 공동체가 지향하는 바가 되었죠. 이 점이 흔하지 않고 또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가치관을 가져감에 있어서 개인적 실천이나, 저희 여담처럼 일상에서 사이드 프로젝트 형태로 실천할 수 있는데 유진님은 삶 전체를 그 가치관으로 꾸리신 거잖아요. 신기하기도 하고 또 궁금하기도 한데, 이런 삶을 산다는 것은 어떤 마음을 들게 하나요? 아쉽거나 힘든 점도 있나요?


유진: 저를 신기해 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있었어요. 제가 생각 할 때도 제가 참 신기하게 살고 있는 것 같은데, 이렇게 살게 된 배경에는 언제나 내가 세상에 필요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청소년기때부터 품어온 바람이 있기 때문이에요. 만약 내가 조직을 꾸린다면 어떤 조직의 형태보다 공동체에 가깝게 꾸려야겠다, 개인적인 것을 유보 시키지 않는 공동체를 만들어야 나 다운 삶을 살 수 있겠단 생각을 했고 또 그런 생각을 기반으로 활동을 했습니다.


여담: 여담이랑 비슷하네요! 저희가 이 활동에 전력을 다하지는 못하지만 직장생활, 학교 생활과 병행 하면서 내가 생각하는 가치를 위해 움직이는 것. 이런 부분이 비슷한 듯 해요.


유진: 맞아요. 질문에 아쉬운 것, 힘든 것을 물어보셨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어쨌든 일과 삶이 분리되지 않으면 쉽게 번아웃이 오기 쉽겠구나, 나 스스로를 착취하지 않는 삶을 살아야지, 나를 착취하는 것을 경계하면서 사는데, 이게 참 쉽지 않고 어렵네요.


여담: 키워드 얘기를 하다가 여기까지 흘러왔는데요, 앞서 이야기한 ‘여성, 생태, 예술’ 이 키워드가 피스어스 활동에 녹아들텐데, 한 활동에 세가지 키워드를 모두 담으려고 하나요? 아니면 키워드 하나에 집중 할 때도 있나요?


유진: 처음엔 그런 것들을 고려는 하지만, 그게 1순위의 것은 아니에요. “일하는 우리가 즐거워야 한다.” 이게 1순위인 것 같아요. 그래야 지치지 않으니까. 이렇게 활동을 하다 보면 결국엔 그 안에 키워드들이 녹아들어가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모농숲’이라는 공유 텃밭 커뮤니티는, 처음 주민들을 만나서는 우리가 어떤 텃밭을 함께 꾸릴지를 얘기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어요. 그런데 막상 모여보니까 여성들이 텃밭 일하다가 너무 더우면 그냥 겉옷 벗어버리고, 속옷 안 입는 등의  모습들이 펼쳐지는 거예요. 따로 목표하진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우리가 추구하는 에코 페미니즘이라는 가치가 활동 안에 녹아 들어가고, 또 보여진다고 생각합니다.

모농숲 텃밭. 사진제공: 피스어스

여담: “여성” “생태”, “예술” 이라는 키워드가 활동 전반에 들어가면서 에코 페미니즘 공동체의 형태를 띄었다는 말씀이군요. 어떤 모습이든 유진님이 지향하고자 하는 바를 놓치지 않는 모습이 보이는 듯 해요.


유진: 사실 개인으로서 자유롭게 살고자 했을 때는 그냥 다 좋다고 하지만 , 내가 대표라는 이름을 달았으니 이 공동체 안에서는 나름의 원칙을 세우고 제한을 하는 편이에요.

예를 들어 첫번째로,  [모농숲] 안에서 식사는 비건을 지향하자, 둘째로 우리가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서 잠시동안 침묵을 함으로서 이 음식과 요리를 해준 사람에게, 또 수확한 작물이 자라난 땅에 감사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다행히도 모농숲 커뮤니티 분들이 이런 원칙, 혹은 제안을 환영 해주셔서 꾸준히 유지하고 있습니다.

비건식사. 사진제공: 피스어스

여담: 원칙을 같이 지킨다는 느낌, 우리가 같은 공동체에 있다는 느낌이 매우 중요한 것 같아요. 피스어스의 이야기를 이어가보자면, 어떤 활동들을 하고 계신지 궁금해요


유진: 먼저, ‘모농숲’이라는 공유 텃밭 커뮤니티를 꾸리고 있어요. 그 안에서 농사도 함께 짓고 같이 채식 요리 해먹고. 또 이런저런 문화 콘텐츠 기획도 합니다.. 콘텐츠는 계절별로 기획을 하고 있는데, 봄에는 쑥이 자라나니까 ‘쑥떡 쑥떡’이라는 프로그램을 열어서 같이 쑥 캐고 쑥버무리 해먹고, 여름에는 감자를 한아름 수확해 ‘감자합니다’라는 이름의 파티를 기획해 즐거운 시간을 보냈어요.

그리고 ‘뜨거운 뜨개방’도 진행을 작년부터 꾸준히 하고 있어요. 작년에는 면생리대를, 올해는 브라렛을 뜨개질로 만드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또 책 모임은 단독으로 진행하진 않지만, 모농숲을 진행할 때 생태 텃밭을 공부하는 책을 함께 읽고, 성매매 집결지 줍깅을 진행했을 땐 성매매를 주제로 한 책을 함께 읽는 등의 시간을 가지곤 했습니다.

뜨거운 뜨개방 작품. 사진제공: 피스어스
줍깅과 모농숲. 사진제공: 피스어스

여담: 이런 피스어스의 활동이 에코 페미니즘과 맞닿아 있다고, 피스어스는 에코 페미니즘 커뮤니티라고도 말씀해주셨는데, 생태 공동체라는 개념이 많은 분들에게 생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생태 공동체가 뭔지, 이를 꾸리기 위해 어떤 노력 등을 하고 계신지 궁금해요.


유진: 생태공동체란, ‘서로 돌봄과 살림을 하는 공동체’라고 생각해요. 저희의 주 구성원은 여성 청년들인데, 사실 스스로 돌봄이나 살림을 하는 능력들이 기존 사회에서는 ‘엄마’라는 이름들이 해온 노동들이잖아요. 생태공동체는 ‘이 일이 단순히 엄마의 몫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스스로가 해야 하는 일이다.’ 라는 원칙을 갖고서 서로 돌봄하고 살림하는 능력을 함께 키워나가는 그런 공동체라고 생각합니다.


여담: 그럼 피스어스에서도 같이 실천을 하면서 생태 공동체를 만들어 가시는 건가요?


유진: 저는 피스어스를 이미 생태 공동체라고 생각해요. 사실 생태 공동체라고 했을 때 어떤 모습들을 떠올리실지는 모르겠지만, 저희가 생태공동체로서 꾸리고 있는 [모농숲]은 대전, 광역시 중에서도 정말 변두리에 위치한 작은 시골 마을이거든요. 이곳에서 저희 나름대로 이런저런 생태적인 실천들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담: 이런 생태 공동체가 대전에만 있는 것은 아닐텐데, 혹시 소개 하고픈 다른 공동체나 유진님이 이상적이라 생각하는 공동체가 있나요?


유진: 지리산 게더링이라는 곳이 있어요. 거기도 저희와 같이 또래의 사람들이 모여 생태적 실천을 하는 공동체입니다. 그곳은 저희처럼 광역시에 위치한 것도 아니고, 진짜 숲에서 살아보자는 신념과 가치를 가지고 활동하는데요, 함께 숲에서 한 달을 지내는 게더링을 하기도 하고, 숲에서 나무로 된 집을 직접 짓기도 하는 등의 실천을 하는 공동체여서 제가 굉장히 좋아라 합니다.


여담: 말씀을 들어보니, 이제 공동체들 안에서도 지역의 차이가 있잖아요. 광역시에 위치한 공동체, 정말 숲과 자연과 가까운 공동체. 혹시 유진님은 나중에 도심보다 자연과 가까운 곳에서 공동체를 꾸리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계신가요?


유진: 아직은 생각이 없어요. 지금은 대전에 뿌리를 한번 내려보자는 다짐을 하면서 살고 있어요.  제가 대전의 중촌동이라는 곳에 살고 있는데요, 행정적으로는 대전의 한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어서 나름대로 대전 곳곳에 접근성이 좋아요. 제가 모농숲을 꾸리고 있는 곳은 유성구 대정동이라는 곳인데 차로 운전해서 약 30분 정도 걸리거든요, 같은 대전이지만 거리가 굉장히 멀고 운전하는 것도 싫어해서 좀 힘들긴 하지만 일단 대전에 살아보고자 합니다.


여담: 모농숲에 ‘달팽이 텃밭’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 얘기를 한 번 듣고 싶어요.

 

달팽이 텃밭. 사진제공: 피스어스

유진: 달팽이 텃밭은 올해 초에 모농숲 주민들과 함께 꾸린 달팽이 모양의 텃밭이고요. 그래서 함께 밭을 디자인을 했어요. 밭 고랑을 이용해서  달팽이의 몸을 무지개와 비슷하게 형상화를 하고 또 머리, 더듬이, 눈도.  

그래서 봄에는 그 모습을 잘 볼 수 있고 여름에는 풀로 무성한 밭이 되는 그런 생태 텃밭입니다. ‘퍼머컬처’라는 개념에서 가져왔는데, 그 개념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에 아름다움도 포함이 돼요. 그래서 ‘우리가 만드는 텃밭이 직선으로만 이뤄진 것이 아니라 곡선도 있도록, 우리 공동체가 표방하는 가치를 넣어 아름답게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하면서 만든 텃밭입니다.

이름을 달팽이로 정한 건 제가 달팽이를 좋아하기때문인데요, 되게 느리고 작고 귀엽잖아요? 우리 공동체도 다 농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라서 느릴 수밖에 없고, 서투를 수밖에 없으니 속도에 스트레스 받지 말고 느리게, 작게, 귀엽게 나아가자 이런 가치를 담았습니다.


여담:  그럼 달팽이 텃밭에서 수확하는 작물들이 있을텐데, 올해는 어떤 걸 수확하셨나요?


유진: 여러가지를 심었어요. 봄에 대전역 옆에 있는 시장에서 모종이랑 씨앗을 샀는데, 초당 옥수수, 고추, 부추, 가지, 토마토 등 여러가지를 심었어요. 막상 수확량이 많지는 않았지만요.

어떤 사회적 메시지를 함께 전달하자면, 올해 여름에 굉장히 더웠잖아요. 그래서 생명력이 강하다는 옥수수도 엄청 시들시들하고 알이 잘 안 맺히더라고요. 부추도 물을 많이 줬야 하는데 비가 너무 안 와서 힘들었어요. 이게 분명히 기후 위기의 영향이 아닌가 하는 짐작을 하기도 했습니다.


여담: 올해 농사가 힘드셨지만, 어쨌든 그렇게 수확을 해서 요리까지 해먹는 것이 공동체에서 주로 하는 것이잖아요. 모농숲에서 먹었던 음식 중 지금 딱 생각나는, 맛있는 비건 요리가 있을까요?


유진: 모농숲에 은우라는 친구가 함께하고 있는데요, 피스어스의 멤버이기도 합니다. 그 친구가 요리를 정말 잘해요.  비건 애플 파이도 막 이따만한 걸 뚝딱 만드세요. 그게 첫 번째로 기억이 나고요, 개인적으로는 파스타가 만들기 쉬워서 많이 만들어 먹거든요. 모농숲에서도 단골 메뉴가 파스타였어요. 수확한 채소와, 오일, 소스 등 넣고 만들었던 파스타가 생각나네요.


여담: 최근 여담과 함께 진행한 행사 <아니, 그래가지구> 에서도 고구마 샐러드를 선보이셨잖아요. 비하인드가 있지만 (웃음)

여담 X 피스어스 행사 <아니, 그래가지구> 에서 선보인 고구마 샐러드

유진: 맞아요, 아 그러면 <아니, 그래가지구> 얘기를 한 번 할까요? 그때 고구마 얘기부터 하자면, <아니, 그래가지구>를 위해서 봄에 달팽이 텃밭에 심었던 고구마를 캤어요. 정말 양이 적었어요. (고구마 순은 많이 나와서 고구마 순 김치를 많이 해먹었네요. ) 어떤 할머니께 우연히 들었는데, 올해 고구마 농사가 진짜 힘들었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또 고구마가 적은 게 우리 잘못만은 아니겠구나 이런 위로를 받았던 기억이 있어요.


여담: 농사 지을 때 마음가짐이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유진: 맞아요.





피스어스와 임유진 대표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았다면 2부에선 여담과 피스어스가 함께 진행했던 행사를 비롯해서 피스어스의 활동의 비하인드, 그리고 활동 기획의 영감의 원천, 에코 페미니즘의 가치 등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여담의 트레이드마크 밸런스 게임의 결과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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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 인스타그램 바로가기 : 여담의 다양한 활동을 살펴보실 수 있어요!

피스어스 인스타그램 바로가기 : 피스어스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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