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_아이돌 사업 좀 해본 여자_100억이 뉘 집 애 이름이냐
몇 년 전 봄.
살랑거리는 날씨에 기분이 좋아져 퇴근하던 중이었던 것 같다.
갑자기 전화 한 통이 걸려왔고,
내 삶의 방향이 완전히 바꿀 수 있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당시 난 이름을 말하면 알만한 온라인 회사의 패션 MD였고 졸업도 하기 전 취업에 성공한,
그러니까 정말 괜찮은 사회생활의 시작을 경험하고 있던 터였다.
"야 나랑 엔터테인먼트 사업.. 같이 해볼래? 투자자가 너가 그때 해줬던 패션 스타일링이 맘에 들었데."
이게 뭔 황당한 소린가 싶었다.
몇 달 전이었나? 이 인간이 뮤직비디오 찍어야 하는데 스타일링을 해줄 사람이 없다며 우는 소리를 했고,
중국 아이돌이라며 소개받은 키가 멀대같던 아이들의 옷을 입히고 꾸며줬던 기억이 났다.
- "사기 아냐? 뭐하는 사람인데? 얼마 투자한다는데? 잘 알고 하는 거 맞아?"
말이 곱게 나갈 리가 없었다.
현실과 얼마나 많은 타협을 하며 살아온 나인데, 인생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고 이 인간은
그와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친구이자 음악 프로듀서였다.
"100억.
3년간 100억 투자받기로 했어. 난 너랑 같이 했으면 좋겠어 이 사업. 너가 패션이랑 온라인이랑 이런 거 하잖아, 니가 맡아줘."
백..? 뭐..?
백 억이라고?
갑자기 머릿속이 띵해졌다. 100억이 뉘 집 애 이름도 아니고 100억이면.. 우리 팀 연간 매출 목표인데..?
처음엔 가능한 건가 싶었다. 당연히 사기일 거라는 마음도 있었고.
그런데 마음이 움직였다.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고.
그리고 진짜 100억이면, TV에 나오는 그런 방탄소년단 같은 아이돌쯤은 만들 수 있는 거 아닐까 싶었다.
딱 한 달 후.
다니던 회사와 작별한 바로 다음날부터 사무실에 나갔다.
사실 사무실이랄 것도 없는 허허벌판 공사판이었다. 이제야 사무실 인테리어를 시작했으니.
먼지가 풀풀 날리는 텅 빈 공간을 보며 친구는 설레 했고 나는 해보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친구가 먼저 입을 떼었다.
"우리 잘할 수 있겠지? 진짜 한번 제대로 해보고 싶어.
음악만 만들다가 이런 기회가 올 줄 누가 알았냐."
- "야. 잘하는 게 문제가 아니야 지금. 아이돌은 어떻게 만드는 건데? 내가 해봤어야 알지."
"나라고 잘 알겠냐. 부딪혀보는 거지 뭐.
다음 주부터 연습생 오디션 보기로 했어. 너도 나와서 같이 봐."
연습생? 아무 이력도 없는 신생회사에 오디션을 보러 오는 애들이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진짜 요새 장래희망이 연예인, 가수가 1등인 게 맞았던 걸까.
치운다고 치웠지만 여전히 공사 중인 사무실 바닥엔 먼지가 많았다.
하지만 그 먼지를 온몸으로 비벼대며 춤을 추는 열정 넘치는 연습생들을 눈앞에서 목격하게 되었다.
'와.. 진짜 가수가 하고 싶은 거구나 쟤네들은.'
이 악물고 하는 모습.
이거 아니면 안될 것 마냥 땀을 흘리던 모습.
지금 기억해보면 나의 머리 속에 선명하게 남아있던 그 뿌연 먼지 속 잔상들이
나를 밤낮없이 일하게 만든 가장 큰 이유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렇게 6명의 아이들이 뽑혔고
이제 우리는 이들을 단 몇개월 내 데뷔시켜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