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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엘 Mar 22. 2024

어느 날 갑자기 말레이시아?

대학을 졸업하고 여행사에 취업하지 못하고 집순이처럼 은둔하게 생활하며 지냈다. 그렇게 백수로 1년 넘게 지냈다. 하루 이틀은 세상 편했다. 실컷 잠도 자고 읽고 싶었던 책도 읽고 영화도 보며 지냈다. 너무나 행복했다. 하지만 그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시간이 흘러 6개월, 9개월이 넘어갈수록 점점 가족들의 눈치를 살피게 되었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점점 불안감이 높아지고 스트레스도 쌓이기 시작했다. 하루하루가 힘겨웠다. 매일 같이 구인광고 사이트를 수십 번도 넘게 들어갔다 나오기를 하면서 이곳저곳에 이력서를 넣었다. 연락이 오는 곳은 없었다.  

그렇게 힘겨운 나날들을 보내고 있던 나에게 어느 날 한 통의 연락으로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부모님과 친하게 지내시는 목사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목사님께서는 봉사자가 필요한데 도와줄 수 있냐는 내용이었다. 부모님께서 아무것도 않는 것보다는 뭐라도 했으면 하는 마음이 더 간절했기에 목사님 말씀에 바로 수락하셨다. 처음엔 봉사 정도는 하고 쉽게 생각했다. 

  

그런데 한국에서의 봉사가 아니었다. 해외 봉사였다. 그것도 가까운 나라도 아닌 6시간이나 걸리는 나라 말레이시아였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에……. 혼자 가려니…. 처음에는 두려웠고 막막했다. 영어도 못 했고 거기다 소심한 성격에 나서는 일은 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패스트푸드점에서 음료 리필도 못해 항상 친구가 대신해 주는 겁쟁이 내가 먼 나라에 가서 어떤 봉사를 할 수 있을까? 혼란스러웠다. 

그래도 '여기서 계속 눈치만 보며 지내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 한쪽에는 이 상황을 빨리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어쩌면 '나를 모르는 곳에서 새로운 것들을 해 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기 시작했다. 

고민 끝에 말레이시아에 가겠다고 결심을 했고, 짐을 싸기 시작했다. 처음엔 어떤 것들을 챙겨야 할지 막막해 인터넷으로 검색도 해 보고 생각하면서 짐을 쌌다. 날씨가 더운 나라이다 보니 얇은 옷가지들을 챙기고 선크림과 선글라스 모자 샌들 구급약들을 챙겼다. 짐을 싸면서 조금씩 설레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다. '과연 잘할 수 있을까?' 

  

공항에 가야 하는 날, 다행히 내가 함께 지낼 분 중 한 분이 한국에 잠깐 들러 오셨다가 다시 말레이시아로 돌아가는 분이 계셔서 같이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긴 여행이 될 것 같은 비행기 기내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며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이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올 수 있도록 멀어져 가는 인천 공항을 바라보며 기도했다. 기내는 아주 좁았다. 말레이인 승무원이 돌아다니면서 서비스를 제공해주며 승객들을 살피고 있었다. 

비행기를 타는 일을 좋아하는 나였지만 오늘은 유난히 기분이 나지 않았다. 아마도 여행을 떠나는 비행기가 아닌 봉사를 하러 간다는 부담감 때문이었는지 비행기 안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시간이 흘러 말레이시아에 도착했다. 도착한 말레이시아 공항을 빠져나오는 순간 숨이 턱 하고 막혀왔다. 

나도 모르게 첫마디가 

“숨을 못 쉬겠어.”

였다. 엄청 뜨거운 햇빛 아래 더운 공기가 온몸을 에워싸는 느낌이 들었다. 바다가 보이면 당장이라도 뛰어 들어가고 싶을 정도였다. 아니면 마시는 물을 머리에 붓고 싶을 정도였다. 택시에 올라타 내가 묵을 숙소로 이동하였다. 이동 거리는 꽤 걸렸다. 

  

택시 안은 그야말로 천국이었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에 창밖으로 선명한 푸른 하늘은 마치 솜사탕으로 멋진 작품을 만들어 놓은 새하얀 구름이 뭉게뭉게 떠 있었다. 한국에서의 하늘 하고는 정말 아주 달랐다. 우리나라 하늘은 연한 하늘색이라면 말레이시아의 하늘색은 아주 선명한 하늘색이었다. 이런 하늘색은 한국에서 본 적이 없다. 차도로 사이사이 보이는 나무들은 무성한 나뭇잎들을 흔들며 나에게 잘 왔다고 인사해 주는 것만 같았다. 

  

한국하고 다르게 차 도로에는 오토바이들이 상당히 많이 지나다녔다. 심지어 고속도로에도 오토바이들이 달리고 있었다. 재미있는 풍경들을 보고 있으니 시간이 금방 지났고 드디어 내가 지낼 곳 이포 숙소에 도착했다. 말레이시아의 첫날이 시작되었다.

다음 날 아침, 내가 봉사할 곳으로 갔다. 그곳은 고아원 아이들을 돌보고 공부를 가르치는 일이었다. 다행히 초등학생 미만의 아이들을 돌보는 일이었다. 처음 만난 아이들은 경계심이라고 하나도 없다. 환하게 웃으며 인사해 주며 다가왔다. 


“하이, 티쳐~”

  

아이들과 지내는 시간이 점점 많아졌다. 그럴수록 답답해지는 언어의 장벽, 결국 현지에 영어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중고등학교 때 공부를 열심히 했더라면 이런 후회가 밀려오는 순간이었다.

하루하루 말레이시아의 생활이 익숙해지고 있었다. 말레이시아에서 아이들과 만남이 재미있어져 갔다. 이곳 고아원은 특이하게 부모님이 계시는 아이들도 있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잠시 이 고아원에 맡겼다고 한다. 부모님이 계시는 아이들은 집안 형편이 좋아져 집에 돌아가기만을 기다리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런 아이들을 보니 짠하였다. 그래도 그 누구 하나 불평하지 않고 즐겁게 지내는 아이들이었다. 

  

그중에 제일 기억나는 아이가 있었는데 유일하게 제일 반응이 시크하고 웃지를 않는 아이였다. 다가가면 도망가고 '어떻게 하면 친해질까?' 했는데 억지로 하지를 않기로 했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억지로 되지 않다는 거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나였기에 시간을 두고 친해지기로 했다. 학원의 생활도 조금씩 익숙해져 갔다. 길도 익히고 주변의 가게들도 알아가고 재미가 있었다. 

가끔 학원 끝나고 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었는데. 제일 맛이 있던 음식은 로띠 차나이 였다. 우리나라 부침개 같은 건데 좀 더 얇고 찢어서 소스에 찍어 먹는 음식이다. 정말 맛있게 하는 가게가 있어서 항상 그 가게에만 가서 먹었다. 그리고 정말 좋아하는 최고의 음식은 저렴하면서 중독성을 일으키는 음식 우리나라의 삼각김밥 같은 음식인데 특이하게 바나나 껍질로 싸였다. 나시르막이다. 나시르막도 종류가 다양한데 재료를 추가할 수 있어서 자신의 기호대로 먹을 수 있다. 

  

나는 기본 맛 나시르막을 제일 좋아했다. 그리고 망고는 원 없이 먹었고 과일의 여왕인 망고스틴도 많이 먹었다. 정말 길가에 앉아 과일을 파는데 가격이 너무나 싸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그리고 말레이시아에서 제일 신기했던 것 중 하나는 어디서나 눈에 많이 띄는 것이다. 바로 중국인이다. 여기가 중국인가? 할 정도로 중국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인들은 오래전부터 이곳에 와서 정착한 사람들이라고 한다. 

역사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듣기로는 말레이시아 사람들의 특징이 부지런하지 못 해서 중국인들이 왔다가 정착하게 되었다는 진짜인지 아닌지 모를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렇게 중국인들이 정착한 말레이시아에는 중국계 말레이인들이 많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말레이어, 영어, 중국어 등 여러 개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중국인이 운영하는 가게들도 많다. 나에게는 중국인들이 이곳에 정착해 살아 준 것이 고맙게 느꼈다. 

왜냐하면, 말레이인들은 종교 때문에 소고기를 먹지 않는다. 그래서 닭요리와 카레가 대표 음식이기 때문에 음식 메뉴가 한정적이다. 그런데 중국인들이 있는 덕분에 음식을 고를 수 있는 폭이 넓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기하게 중국인들은 불교 신자들이기 때문에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 말레이시아는 종교를 다 받아들이기 때문에 서로의 종교문화를 존중한다. 한 날은 길거리가 시끌벅적하여 나가보니 많은 사람이 길에 서서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했다. 알고 보니 이곳은 여러 신을 믿는 나라이기에 종교행사 같은 것을 많이 하는데 한국에서 하는 그런 행사와는 다르게 종교행사가 꼭 축제행진 같이 크게 한다. 너무 신기해서 보려고 했지만 나는 이내 생각을 접었다. 

  

일반 사람들이 보기에는 조금 섬뜩하고 기인한 장면들도 있다는 말에 보지 않았다. 또 말레이시아에서 제일 신기했던 건 밤 8시면 모든 가게가 문을 닫는다. 밤에는 돌아다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말레이시아에서 필수 아이템은 자동차이다. 우리나라는 자동차 소유가 가족당 1대에서 많으면 2대를 소유하고 있는데 이곳은 1대는 필수이고 2대는 기본이고 3대는 옵션이라고 한다. 농담이라지만 정말 그만큼 자동차가 집집마다 많았다. 

  

날씨는 너무 더우므로 실내에는 에어컨이 24시간 가동 중이다. 정말 놀라운 사실은 이 나라는 더위만 있을 줄 알았는데 추울 때도 있다는 것이다. 그때가 되면 사람들이 긴소매를 입고 다닌다는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는데 우기라고 해서 비가 내리는 시즌이 있다. 

그때 사람들이 추위를 느낀다고 한다. 막상 우기 때가 되니 나는 너무 시원한 여름 같았다. 다른 나라의 문화를 알아가는 재미를 느끼며 지내고 있는 나에게 한 가지 제일 싫었던 건 바로 모기였다. 정말 모기도 많다. 항상 방 안에 모기퇴치 약을 뿌려야 했고 퇴치제를 몸에 바르고 다녔다. 퇴치제가 향수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모기와의 전쟁으로 하루를 보내고 잠든 말레이시아 밤 달빛이 아주 예쁜 밤이었다. 처음 이곳에 오기 전의 두려움이 이제는 점점 설렘으로 바뀌는 것 같다. 내일은 어떤 일들이 펼쳐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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