춥지도 덥지도 않아 몸의 바이오리듬이 저절로 안정권을 유지하는 4월과 5월은 한국의 사계절을 고루 좋아하는 나에게도 특별히 아끼는 달이다. 특히 앞으로 다가올 섬의 날씨는 극한 더위와 습함, 태풍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으니 지금의 호사를 충분히 즐겨두고 싶은 마음도 한몫할 수밖에 없다. 일 년 중 가장 산책이라는 행위에 진심이 되는 계절. 적당한 온도, 끈적이지 않는 습도, 아침 햇살의 따뜻하고 보드라운 결과 해 질 녘이 되면 도는 약간의 쌀쌀함마저 모든 것이 약속이라도 한 듯 적당하게 우리와 발을 맞춰준다. 운동이 몸의 근육을 단단하게 만드는 것이라면 산책은 마음의 근육을 말랑하게 해 준다. 말랑해진 마음은 혀의 근육마저 풀어줘 평소에 무겁게 입안에만 머금고 있던 이야기들을 힘들이지 않고 툭 밖으로 내뱉게 해주기도 한다.
"실은 요즘 내가 조금 우울했는데 말이야..." 그는 이미 강을 건넌 사람의 무사한 얼굴로 말했다. 사실 어렴풋이 느끼고 있던 거라 그간 물어보지도 못하고 답답했던 마음이 잠시 시원했지만 이내 그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나는 그의 말이 끊기지 않기를 바라면서 가만히 듣고 있었다. 생활의 영역과 일의 영역이 맞닿아있어 하루의 거의 대부분을 (다행히 사이좋게) 붙어있는 우리 사이라 해도 희로애락의 디테일한 부분까지 공유하며 살지는 못한다. 기쁨은 드러나려는 속성을 가졌지만 슬픔은 숨고 도망가려는 성질을 가졌기 때문이다. 때로는 궁금해도 기다려야 하고 답답하지만 끝내 묻어두기도 해야 하는 순간들이 분명 있다.
우리는 부부이기 때문에 서로에 대해 더 잘 알까. 안다고 생각하는 것일 뿐 사실은 더 모르는 걸까.
"눈빛만 봐도 내가 저 양반이 무슨 생각하는지 다 알지."
"표정만 보면 알지. 그걸 꼭 말로 해야 아나."
반평생을 넘게 함께 살아온 부부들의 이런 독심술 같은 말들. 내 나이 한 팔십쯤 되어 결혼 50주년을 기념하는 금혼식 때면 가능할까. 금혼식을 5년 정도 앞두신 부모님을 떠올려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거 같다. 오십 년 가까이를 적어도 내가 아는 한 가정과 부부간의 결정적 위기 없이 살고 계시지만 아빠와 엄마는 여전히 어느 부분에선 서로를 전혀 모르는 거 같은 느낌이 든다. 어떨 때는 정말 의아한 마음이 들어 "사십 년을 넘게 살았는데 아직도 모르겠어? 서로가 그렇게 이해가 안 돼?"라고 물어보면 엄마의 대답은 늘 확신에 차 있었다. "아빠가 젊었을 때는 안 그랬어."라고. 도무지 확인할 길이 없으니 나는 꼼짝없이 ko패를 당하고 만다. 하지만 내심 생각한다. 같은 질문으로 물어보면 아마 아빠도 같은 대답일걸.
함께 살아온 시간만큼이나 서로를 향해 덕지덕지 붙어있는 사랑과 미움, 정, 가정의 경제력과 가사에 대한 각자의 기여도, 함께 겪은 산전수전 공중전 다 떼고 벌거벗어보면 우리는 모두 처음부터 너무 다른 사람들이었다. 다르기 때문에 끌렸을 수도 다르기 때문에 오히려 알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서로를 알아가며 살아가며 부부라는 이름으로 조금씩 물들었을 뿐이지 여전히 누구나 마음은 한 개인으로서 선명하게 존재한다. 몇십 년을 가부장적인 남편 밑에서 살아온 할머니가 얼마 남지 않은 인생 앞에서는 이제 내 맘대로 살고 싶다! 를 외치는 건 너무나 당연한 개인적이고픈 인간의 본능이자 억눌려있던 욕구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니까.
그러니 이제 결혼식 주례사에서 "험난한 세상 부부로서 일심동체가 되어..."라는 말은 퇴장하고 두 사람이 가진 두 개의 마음을 빨리 인정하면 인정할수록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얘기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오은영 박사님도 한 tv 프로그램에서 부부는 일심동체가 아니라 이심이체라고 하였다.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난 후에 따라오는 성숙한 존중과 상대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결혼생활이 행복으로 연결될 확률이 더 높아질 테니 말이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나는 남편의 마음을 얼마나 깊이 들여다보려고 노력했나 반성하게 된다. 너의 마음이니 네가 알아서 해결해. 하거나 그가 혼자 분투하는 것을 보고도 모른 척하지는 않았는지 말이다.
독심술의 술은 '재주, 꾀'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재주나 꾀가 통하지 않는 것이 바로 부부관계이자 결혼생활인 거 같다. 14년째 나와 살고 있는 나의 배우자이자 존중받아 마땅한 개인으로서의 한 사람 그리고 이심이체로서의 우리 두 사람 모두 소중하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그를 더 알고 싶어 말한다. "우리 산책 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