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다는 것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by 신새벽

2년째 밥을 챙겨주는 마당냥이 한 마리가 있다. 만지면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푸석푸석해 보이는 털이 녀석의 첫인상이었다. 보통은 발소리만 들려도 도망을 가기 때문에 길고양이에게 밥 주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닌데 녀석은 도망은 가지 않고 멀찍이 떨어져만 있었다. '배가 많이 고프구나!' 밥그릇에 사료를 채워놓고 숨어서 지켜보니 그야말로 살금살금 다가와 허겁지겁 한 톨도 남기지 않고 입안으로 쓸어 담았다.


그렇게 놓아주는 밥은 잘 먹었지만 사람에 대한 어떤 기억이 깊이 박혔는지 눈만 마주쳐도 하-악 고봉밥을 줘도 하-악. 이놈아 그래도 밥 주는 사람에게 하악질은 좀 아니지 않니. 하고 투덜대면서도 나는 하숙집 아줌마처럼 밥은 먹고 다니라는 심정으로 끼니를 챙겨주었다. 중성화가 되어있다는 표식이 있어(중성화가 된 길고양이들은 그 표시로 왼쪽 귀 끝이 조금 잘려있다.) 그래도 금방 마음을 열지 않을까 기대도 했지만 한 발자국 다가가면 열 발자국 떨어지기가 그렇게 한동안 계속되었다.


사람도 배부르면 만사가 귀찮고 그래서 마음도 좀 너그러워지는 면이 있지 않던가. 어느 날 녀석이 배부르게 밥을 먹고 경계태세도 아니길래 이때다 싶어 털끝만이라도 조금 만져보려던 순간, 아직은 어림도 없다는 듯 두툼한 앞발로 묵직하고 잽싼 냥펀치가 날아왔다. "알았다, 알았어. 안 만질게." 털끝하나 건드리지 못하게 하는 녀석은 뭐가 그리 당당한지 아침과 저녁 하루에 두 번은 꼭 밥을 먹으러 왔다. 비가 오든 눈이 오든 하루도 거르는 날이 없었다. 인간인 나는 더 이상 성실함이 미덕만이 되지 못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어서일까. 성실하다는 건 어딘가 짠한 마음이 든다. '그래. 성실한 고양이는 밥 먹을 자격이 있지. 우리 집에 오는 한 내가 밥은 잘 챙겨줄게.' 속으로 혼자 다짐했다. 그러고는 여전히 뭐에 쫓기듯 사료를 욱여넣는 뒤통수에 대고 말했다.


"괜찮아... 괜찮아... 아무도 안 뺏어먹어. 천천히 먹어도 돼."


고양이가 내 말을 알아들을 리 없지만 나는 지지치도 않고 몇 번이고 되풀이했다. 입은 빠르게 사료를 흡입하면서도 왠지 귀로는 듣고 있을 거 같았기 때문이다. 한시도 쉬지 않고 주위를 경계하고 작은 소리에도 크게 놀라는 고달픈 길 위의 한 생명의 삶을 그렇게 가까이에서 꽤 긴 기간 동안 지켜본 것은 처음이었기에 더 안쓰러웠다. 너는 그저 고양이로 태어난 것뿐인데. 사실 끝까지 책임지지도 못할 건데 괜한 정이 들까 봐 밥 주는 일이 망설여지기도 했다. 하지만 2년째 개근 중인 이 녀석의 성실함이, 겨울에 사람 발이 푹푹 빠질 정도로 한 번씩 제주에 폭설이 내려도 자기 몸만 한 눈길을 헤집고 밥을 먹으러 오는 삶의 의지를 어찌 인정해주지 않을 수 있는가.


공존의 방식은 시대에 따라 변하기도 하고 개인에 따라 다르기도 하다. 하지만 먹고. 산다. 는 건 사람이나 동물이나 어쩌면 생의 전부인 것이다. 나는 그런 녀석에게 되도록 오래도록 밥을 주고 싶다. 여전히 우리는 살아가며 많은 것들을 망설이고 걱정하지만 그럼에도 사랑하고 사랑받는 걸 두려워하지 말자 다짐해 본다. 크고 높고 이기적인 세상 속에 숨어있는 작고 낮고 나 아닌 것들을 가슴에 담고 노래하자. 그리하여 이 세상에 살아있는 모든 존재들이 살아있다는 것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 하악질을 멈추었을 때 녀석의 마음이 조금 열린 거 같아 '두부'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 우리나라 길고양이의 평균 수명은 3년 정도라고 한다. 전국적으로 길고양이 중성화 사업을 통해 개체수 조절에도 신경 쓰고 있지만 여전히 길고양이들은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하거나 관심 밖의 일인 경우가 많다. 길에서 태어났지만 우리의 이웃이라는 인식개선이 확대되길 바라본다.

* 동물 학대는 동물보호법에 의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