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실 미안하지 않다.

by 신새벽

어느 날 깨달았다. 내가 버릇처럼 하고 있다는 것을.


"죄송하지만..." "죄송한데요..." "... 죄송합니다."


언제부터인가 버릇과도 같이 되어버린 이 말이 붙은 문장들이 나의 일상적 구어가 되어있었다. 내가 하는 말 중에서도 자주 쓰는 표현이 '죄송하다'(또는 미안하다)는게 순간 내가 너무 변변치 못하고 어딘가 부족한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나는 뭐가 그렇게 죄송한 걸까. 처음은 아마도 내가 할 말을 상대에게 예의 있게 표현하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앞으로 내가 하려는 말이나 행동이 상대방의 것과 같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일단은 양해를 구하는 것이다. 그러면 실제로 상대는 나의 태도를 호의로 받아주는 경우가 많았다. 예의를 지키는데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문제는 '죄송'이라는 단어가 영혼 없이 문장에 붙을 때이다.


첫째, 죄송하지도 않은데 죄송하다고 하는 것. 둘째, 죄송한 일 정도는 아닌데 죄송하다고 하는 것. 셋째, 일단 죄송하다고 하는 것.


지인의 집에 초대를 받아 밥을 먹은 날이었다. 날씨가 좋아서 마당에서 고기도 굽고 서로의 안부도 나누며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갑자기 바람이 불어 테이블 위에 있던 식기와 잔들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충분히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드는 순간이었지만 다행스러운 건 식사를 다 마치고 담소를 나누는 중이었다. 우리는 잠깐 당황하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떨어진 음식들과 그릇들을 차분히 치우기 시작했다.


"죄송해요. 초대해 놓고 이런 모습을 보이네요." "제가 할게요. 가만히 앉아계세요. 죄송해요." "괜히 손만 지저분해지셨네요. 너무 죄송해요." 나는 몇 번이고 괜찮다고 했지만 집주인의 죄송하다는 말은 끝날 줄을 몰랐다. 손님을 초대해 놓고 이런 일이 벌어졌으니 집주인으로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것은 충분히 이해했지만 내 옷이 더러워지거나 다친 것도 아니었고 이 상황이 벌어진 건 갑작스러운 바람 탓이지 엄연히 말하면 집주인의 잘못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죄송하다는 말을 계속 듣고 있자니 상대방의 죄송함이 오히려 불편하게 들려왔다.


"죄송하다는 말은 이제 됐어요. 이건 k씨가 계속 죄송해할 일이 아니에요. 그냥 치우면 되는 일이고 나는 정말 괜찮아요."


나는 그때 k에게서 내 모습을 봤다고 생각한 거 같다. 그렇게까지 죄송해할 일도 아닌데 필요이상으로 스스로 죄송한 사람을 자처하는 버릇. 이런 좋지 않은 버릇이 오래되면 나의 자존감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무엇보다 내 감정을 스스로 속이는 건 건강하지 않다. 그럴만한 일인가. 먼저 생각해 보고 내뱉어도 늦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그럴만한 일도 아닌 것들이 세상에는 널리고 널렸다. 부부싸움도 시간이 지나 생각해 보면 그 이유가 너무 하찮아서 어이없을 때가 있는 것처럼. 그렇다면 의례적인 죄송하다는 말보다는 미소와 함께 목례로, 고맙다는 인사로 대신할 수 있는 일들이 더 많아지지 않을까. 그렇게 쓸데없이 새어나가는 감정들을 잘 통제하고 자신의 마음부터 똑바로 보는 것만으로도 삶이 조금은 덜 피곤할지 모른다. 나는 이제 죄송하지 않은 일을 죄송하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사실 미안하지 않다.


오늘 하루 당신은 죄송하다는 말을 몇 번 했나요? 그건 정말로 죄송해할 만한 일이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