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행복해야겠다. 2.

by 신새벽

"로또 된 거야? 솔직하게 말해봐."


세계여행을 떠날 거라고 했을 때 주변에서 많이 들었던 말이다. 인생에서 로또 정도는 되어야 갈 수 있는 그런 여행. 그들과 나 사이의 이 여행에 대한 심리적 괴리감을 나는 어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 다만 그렇다기엔 우리보다도 저예산의, 어린 아기와 여행하는, 호스텔이나 중저가 호텔에 묵으며 장기여행을 하는 노부부와 같은 여행자들이 너무 많았다는 게 답변이 될까.


여행에서 돌아온 후 오래 꾸물대지 않고 제주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결혼 당시 둘 다 일에 지쳐 아무것도 하기 싫어서 선택했던 신혼여행지. 다시 예전의 자리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마음속의 깊은 열망이 떠올린 곳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올가미에서 도망치듯 도시를 떠났다. 압박과 경쟁으로 사다리를 오르기보다 차라리 모든 것으로부터의 멀어짐을 택했다.


제주가, 시골에 사는 것이 삶의 모든 고민들을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니다. 산다는 것 자체가 치열함이니까. 바다를 건너와도 멀어지지 않는 것도 있었다. "아직은 한창 일을 하고 열심히 벌고 모아야 하지 않느냐. 그래도 자식은 한 명이라도 있어야 한다. 지금이야 좋지만 나이 들어 자식 없으면 외롭다."는 레퍼토리. 물론 모두 악의 없이 해주시는 말씀인 걸 안다. 그래서 나도 별다른 토 달지 않고 그냥 웃고 만다. 어차피 옳고 그름이나 설득의 문제는 아니기에. 나이 들어 자식 없어서 외로울지 안 외로울지는 지금 당장 모르겠지만 이것 하나는 안다. 내가 원해서 도시로 돌아갈 일은 아마도 없을 거라는 것. 그만큼 지금의 삶이 주는 적당한 느슨함이 좋다.


그런데 왜, 무슨 이유로 나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작아지는 걸까.


1년 동안 여행을 하며 계좌에 출금뿐인 삶을 살 때도 별 타격감이 없었는데 밥벌이는 하고 사는 지금 이러는 건 어딘가 이상하다. 마흔. 사십 대가 시작된다는 나이의 특수성 때문일까. 그럼 서른을 지나 삼십 대를 보낼 때도 이런 고민들을 했었던가. 그저 이런 생각들이 내 마음속에 있는 많은 방 중에 평소에는 잘 열어보지 않는 그런 작은방 같기도 하고. 아니면 인체가 성숙기에서 노년기로 접어드는 시기, 대개 마흔 살에서 쉰 살 사이에 온다는 갱년기의 전조증상인가. 뭐 하나 선명한 것이 없다. 뜬구름 같은 생각들만 머릿속을 떠다녔다. 그러다 올해 초 엄마와 나눈 대화가 생각났다.


"엄마는 사십 대를 어떻게 보냈어?"


"글쎄... 사십 대를 어떻게 보냈지? 잘 기억이 안 나네. 너희들이 한창 클 때라 뒷바라지하고(고등학생 때는 집과 학교가 멀어 엄마가 운전을 해 통학을 시켜주셨다.) 아빠도 진급이다 뭐다 신경 쓸게 많았지. 그러다 보니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르고 그냥 사십 대가 지나간 거 같아."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맞아. 우리 가족한테 그런 시기가 있었어.”하고 당시에는 그저 옛 기억을 추억 삼아 떠올리는 정도로 가볍게 넘겼었다.


시간이 지나도 그날의 대화는 마음 한편에서 떠나질 않았다. 오히려 잘 기억나지 않는다는 엄마의 말을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엄마의 마흔도, 사십 대도 엄마에게는 특별했을 텐데 기억 속에 없다니... 부모는 그게 행복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이 나이가 되니 비로소 알게 되는 것이 있다.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 그것이 부모라는 이름의 사랑과 희생일지라도. 그래서 아무것도 없는 거 같은 지금의 이런 나라도 나는 행복해야겠다. 엄마의 인생에서도 아빠의 인생에서도 한 번뿐인 그 시간들을 양분 삼아 자란 나의 이 삶을 허투루 쓸 수는 없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