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 어딘가는 마음껏 촌스럽고 싶다.

by 신새벽

요즘은 섬의 시골에도 쿠팡 배달차가 거의 매일 다닌다. 마켓컬리, 새벽배송, 배달의 민족은 여전히 나와 상관없는 얘기지만 그래도 핸드폰 클릭 한 번이면 집 문 앞까지 배송해 준다는 게 어딘가. 이마트, 롯데마트 같은 대형마트를 가려면 족히 차로 한 시간은 걸리는 시골생활자에게는 쿠팡만으로도 감지덕지다. 생활용품 구입은 읍내의 농협 하나로마트나 쿠팡을 이용하지만 기본적인 채소는 조금이라도 텃밭에서 키워먹으려고 노력한다. 처음에는 소꿉장난하듯 재미로 시작해 이제는 '내가 먹는 것의 최소한만이라도 스스로 땅을 일궈 길러먹는다.'는 나와의 약속이 되었다. 다행히 나는 그 약속을 십 년 동안 잘 지키고 있다.


제주에는 지역마다 오일장이 선다. 그중에서도 5일과 0일이 장날인 바닷가 옆 세화오일장을 좋아한다. 꼭 살 것이 없더라도 마실 가듯 들러 설탕 가득 발린 핫도그에 케첩 잔뜩 둘러 먹고 튼실한 호두가 통째로 들어간 호두과자 한 봉지를 손에 들고 오면 하루종일 기분이 좋다. 7천 원의 행복. 봄 오일장의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각종 채소 모종들이다. 작은 포트에 심긴 여린 새잎들이 바람에 흔들리기라도 하면 나를 사가서 얼른 밭에 심으라는 듯 손짓하는 것만 같다. 밭은 작고 심고 싶은 것은 많고. 집 옆의 작은 텃밭은 곧 나의 실험실이 되어 이 계절이면 아침 해가 나에게 밥을 먹여주듯 일어나 밭으로 가 새벽이슬 머금은 어린 채소들과 눈인사를 한다.


"밤새 잘 잤니? 어제보다 잎이 조금 더 커진 거 같네."


애호박은 두식구가 먹기에는 수확량이 너무 많았다. 수박이나 참외 같은 과일류는 자리도 많이 차지하지만 생각보다 골고루 당도 내기가 쉽지 않다. 대파는 대량으로 심지 않는 한 먹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사 먹는 편이 낫다.(배달이 안되고 외식 횟수가 적다 보니 집밥을 많이 해 먹어서 그런 이유도 있다.) 해가 드는 방향과 작물이 컸을 때의 키를 고려해 심어야 한다. 등등 한해 한해의 경험만이 가장 확실한 선생님이 되어주었다.


너무 많이 심어도 처치 곤란이고 다품종으로 욕심을 내면 어떤 것에서도 알찬 수확물을 얻기 힘들다. 그중에서도 가장 크게 배운 것은 내가 먹는 것이 어디에서 오는지, 어떻게 자라는지 또 얼마큼의 노력이 들어가는지를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당연히 식재료와 음식을 대하는 태도가 예전과 같을 수는 없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땅에도 관심이 생겼다. 땅이란 게 무엇이길래 이렇게 작은 씨앗 하나를 풍성한 열매로 키워내는 걸까. 물론 땅,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흙 이외에도 햇빛, 배수, 통풍, 영양분 같은 조건들이 잘 맞아야 하지만 많은 문학작품에서 땅을 어머니의 품에 비유하는 것은 모두 생명을 품고 길러내기 때문이 아닐까. 별생각 없이 텃밭 한 구석에 묻어버린 토마토 꼭지가 이듬해 그 자리에서 싹을 틔워 열매까지 맺는 모습을 보며 땅의 생명력과 순환하는 자연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한 편의 살아있는 다큐멘터리를 보듯 흥미로웠다.


흙을 만지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손톱에 낀 까만 흙 때도 내가 살아있다고 말해주는 거 같다.


작년부터는 밭에 거름으로 쓸 퇴비를 직접 만들어 보는 실험을 하고 있다. 만원이면 냄새도 안 나고 깨끗하게 포장된 35리터짜리 퇴비 한포대가 이틀 만에 집까지 배달되는데 나는 굳이 6개월에 걸쳐 이 냄새나고 무거운 부숙물덩이를 뒤집고 또 뒤집는다. 자연은 어떻게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가. 지렁이는 땅속에서 어떤 일을 하는가. 지구라는 숲과 밭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또 한 번 자연의 선생님에게 배움을 청하고 있다. 돈으로 얼마든지 편리함을 사고 트렌디한 삶이 많은 이들의 워너비가 된 세련된 세상에서 나의 삶 어딘가는 관대한 자연의 품에 안겨 마음껏 촌스럽고 싶다. 질퍽이는 땅을 밟고 자유롭게 저 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