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행복해야겠다. 1.

by 신새벽

‘내가 특별히 잘하는 게 없구나. 자신 있게 내세울 만한 게 없구나.’


사십 대에 접어들던 해 이런 생각의 단편들이 한동안 이어졌던 시간들이 있었다. 한 분야에서 오랜 시간 일을 해 상징적인 커리어가 쌓인 것도 아니고 나만이 할 수 있는 전문직의 기술을 가진 것도 아닌 마흔이라는 나이는 이제 꽤 무게감이 느껴지는데 나는 너무 가벼운 느낌이랄까. 대단한 걸 바란 건 아니지만 그냥 마흔쯤 되면 돈, 명예, 지위, 권력 같은 세상이 인정해 줄 만한 것 중 하나는 가지게 될 줄 알았다. 그런 것들이 ‘나 그동안 열심히 살아서 이만큼 쌓았어.’라고 말해줄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었던 거 같다.


내 손에 쥐고 있는 것이 없다고 느껴질 때 사람은 본능적으로 주저앉거나 뒤를 돌아보게 된다. 앞으로 나아가려면 아주 작은 동력이라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희망이든 분노든.


나는 뒤를 돌아보는 걸 선택했다. 첫 직장부터 지금의 나이까지 대략 16,7년의 시간. 차분히 나의 시간들을 복기해보고 싶어졌다. 어렸을 때는 라디오 작가가 되고 싶었다. 새벽까지 라디오를 듣다 보면 애국가가 흘러나오는 시간이 있는데 그때의 창밖으로 어스름 밝아오던 풍경과 창문을 열고 맡던 새벽 공기의 내음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라디오 작가는 되지 못했다. 밥벌이의 지겨움과 고단함을 알게 된 후부터는 영원히 동경할 수 있는 꿈 하나가 남아있어서 오히려 다행인 건가... 하는 생각도 든다.


결혼을 하고 얼마 후, 고척교 다리 위를 울며 걸었던 그날밤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시어머니가 편찮으셔서 병원에 입원해 계실 때였는데 입맛이 너무 떨어지셔서 늘 똑같은 병원밥 말고 뭔가 다른 음식이라도 드시게 했어야 했다. 요리도 못하는 내가 무슨 생각이었는지, 아마도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시어머니께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었겠지만... 자진해서 삼계탕을 만들어 갖다 드리고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가 엄마 아플 때도 죽 한번 만들어 준 적 없는데 엉엉엉"


그때 나는 알았다. 결혼을 해야 어른이 된다는 논리에도 안 맞는 말을 왜 그렇게들 많이 하는 건지. 지금도 나는 저 말이 미혼자들의 삶을 멋대로 어른이 되지 못한 아이로 가둬두는 보이지 않는 폭력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에게는, 적어도 그때의 내가 느꼈던 감정은 지금껏 내가 보지 못했던 풍경과도 같이 느껴졌다.


여전히 내가 아직 보지 못한 너머의 풍경들이 많겠지.

끝내 나는 볼 수 없는 풍경이라면 그곳에서 홀로 기다리고 있을 이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릴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맞벌이 3년 차가 되던 해. 남편과 나는 직장을 그만두고 살던 집을 정리한 후 배낭을 메고 세계여행을 떠났다. 거미줄처럼 촘촘한 일상에서 벗어나 관계없는 타인이 되어 우연한 여행자로 그들의 삶을 관조하고 싶었다. 그것이 곧 나를 위한, 우리가 살아갈 날들을 위한 다음의 좋은 밑거름이 되어줄 거라 생각하며.


먹을 수 있을 때 먹고 쌀 수 있을 때 싸고 할 수 있을 때 한다.


355일간 세계를 여행하며 우리가 얻은 교훈이다. 단순한 진리. 만만치 않은 돈과 시간을 써서 얻은 교훈이라 하기엔 싱겁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나는 우리의 여행이 대단한 것이 아니어서 좋았다. 이것으로 인생이 드라마틱하게 바뀌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이탈리아 알베르벨로 레스토랑 주인의 친절함. 네팔 포카라에서 푼힐 트레킹을 도와줬던 포터가 짊어진 가장의 무게. 그들 모두가 내가 알고 있던 삶의 낯과 다르지 않았다. 여행 중 우리가 만난 그 누구도 더 특별하거나 더 하찮은 삶은 없었다.


그렇게 싸우스 코리아에서 온(프롬 코리아라고 하면 싸우스? 노스?라고 대부분 되물어온다.) 우연한 여행자로 산 날들이 지나 여행을 끝내야 할 때가 다가왔다. 우리는 다음을 선택해야 했다.


출발한 곳으로 돌아갈 것인가, 새로운 도착지로 떠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