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케이 Oct 20. 2019

사자

사고 싶은게 없다

친구가 뜬금없이 물어왔다. 가지고 싶은게 뭐가 있냐고.


생일은 날을 거꾸로 세는게 더 빠를 정도로 멀었고 그 날이 생일이었다고 한들 그런걸 챙기는 스타일도 아니었다. 왜 물어봤는지 이해는 안되었지만 답변은 해줘야 했기에 잠시 고민 후 말을 이었다.


서울에 집이 있으면 좋겠어. 아파트 같은 걸로. 근데 너무 비싸니 이건 거의 꿈에 가까우니 살 수 없을테고. 음...... 결국 갖고 싶은게 없네.


말하고 보니 나는 갖고 싶은게 없었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나는 사고 싶는게 없다.


어디서 새 아이폰이나 맥북이 주어진다고 할 때, 그걸 마다할 사람은 드물 것이다. 나도 그렇고. 그렇다고 그걸 그 사람이 그 물건을 원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우연히 전단지와 함께 물티슈를 받게 된 사람을 보곤, 그가 물티슈를 갖고 싶어 했었다고 생각하면 안되듯이 말이다.


성인이 그걸 갖고 싶다고 표현 할 때 보통 하늘에서 선물로 떨어지길 바란다던가, 하루 빨리 크리스마스 이브가 되길 기다리는 느낌은 아니다. 돈이 있다면, 돈이 생기게 된다면 그걸 사고 싶다는 의미 일 것이다. 그런 뜻에서 나는 현재 갖고 싶은게 없고, 사고 싶은게 없다. (킹갓제너럴 서울 아파트는 예외로하자...)


처음 질문을 던진건 친구였지만, 며칠동안 머리 속에서 같은 질문을 계속 되풀이한건 친구가 아닌 나였다. 내가 갖고 싶은게 사고 싶은게 없다는 건 큰 충격이었다.



위에 글을 쓴게 거의 한 달 전인데 그 뒤 뭔가 쓰려고 했던게 있는데 잘 생각나지 않는다.


그 때 했던 생각들을 그냥 지금 시점에서 이어서 해보자면, 사고 싶은게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물건들 대부분이 내가 생각하는 기회비용 초과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그걸 사면 좋지만, 안사면 더 좋다. 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더 좋다라는 건, 사지 않아서 생기는 기회비용은 바로 내 인생의 시간이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100만원짜리 신형 아이폰을 안사면, 한달 정도 백수로 살 수 있다. 새 폰을 살래 vs 한달 놀기로 치환된 이 비교는 거의 대부분 한달 놀기 쪽이 승리하게 된다. 아무리 좋은 물건도 일주일 이상 기쁨을 줄 수는 없지만 한달 노는건 한달을 온전히 기쁘게 지낼 수 있으니 말이다.


물론 이 계산이 아주 정확한 건 아니지만(이 기준으로 본다면 내가 해외여행을 가는 건 몹시 비이성적인 행동이다), 대부분에서는 이 기준을 따르고 있는게 아닌가 싶다.


아무튼, 어쨌든 지금은 사고 싶은게 없다.

근데 뭔가 하나 생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 한달에 한번 월급날은 뭔가 더 기쁜 날이 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매거진의 이전글 게으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