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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 foresta Nov 04. 2021

10. 나는 왜 이 길에 서있나




레온에 있는 병원으로 가기로 결심한 건, 그날 아침을 먹으러 들른 Bar 에서 누군가가 해준 충고 덕분이었다. 팔에 올라온 수포를 보고는 레온에 있는 San Francesco 병원에 가보라고 누군가 충고를 해줬고, 그렇게 병원 이름 하나만 가지고 예정에 없던 레온으로 왔다. 유심을 사지 않았기 때문에 길 위에서 인터넷도 쓸 수 없었고, 나는 스페인어를 못했다. 그리고 스페인 사람들은 영어를 못했다. 병원에 가겠다고 버스를 탔을 뿐 어떻게 병원을 찾아갈지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늘 그렇듯 내게 주어진 지도는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들이었으니까.


버스터미널을 도착해 무작정 사람들에게 San Francesco 병원을 아냐고 물어보기 시작했다. "Hola! Do you know where is 'San Francesco' hospital? (안녕, 산 프란체스코 병원이 어디인지 아시나요?)" 대충 스페인어로 짧은 인사만 건네고 영어로 던지는 내 질문에도 사람들은 최선을 다해 답해 주려고 했다. 길에서 물어봐도 아는 사람이 없어서 이번엔 가게에 들어가 물어보기로 했다. 길가에 있던 한 담배 가게에 들어가 같은 질문을 건넸다. 다행히도 주인이 병원이 어디 있는지 아는 듯했다. 문제는 내가 설명을 알아듣지 못한다는 것뿐.


한창 설명을 하다가 내가 전혀 못 알아듣는 눈치를 보이자, 그는 종이를 꺼내서 약도를 그려주기 시작했다. "저 쪽으로 쭉 가면 다리가 있어. 다리를 건너서 쭉 가다 보면 공원이 나오고, 공원을 지나 오른쪽으로 꺾으면 병원이 나와"라고 말하려던 것이라는 걸, 약도를 보고 나서 이해할 수 있었다. 그가 약도를 그리며 설명을 해주는 동안 고개를 열 번쯤 끄덕이며 내가 말뜻을 이해했다는 걸 보여주었다. 유일하게 마음을 전할 수 있는 단어였던 "Gracias! (고맙습니다)"를 여러 번 외치고 약도를 쥐고 가게를 나섰다.


다리를 찾는 건 쉬웠고 공원까지도 무사히 잘 도착했는데, 공원 안에서 또 길을 잃고 말았다. 분명히 약도 속에 공원 지나는 길은 일직선인데 왜 내 앞에 길은 이렇게 헷갈리는지. 어쩔 수 없이 다시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가장 여유롭고 친절해 보이는 분에게 다가가 길을 물었다. "산 프란체스코 병원이 어디인지 아시나요?" 그녀는 잠시 약도를 잠시 보더니 자신도 그 병원에 가는 길이라며 (?) 병원까지 함께 가자고 했다. '휴, 다행이다...' 그제야 쫄았던 마음이 한결 놓였다. 그녀의 도움으로 무사히 병원에 들어서 함께 리셉션까지 도착했다. "Gracias!" 인사를 건넨 후 헤어지고 돌아보니 그녀는 다시 출구로 향하고 있었다.


'볼일이 있어서 병원까지 함께 가자고 했을 거'라는 건 스페인어를 못하는 내 추측이었을 뿐, 그녀가 가던 길을 멈추고 나를 병원까지 데려다준 거라는 걸 출구로 향하는 뒷모습을 보고 나서야 깨달았다. '앗!'하고 깨닫는 사이 문 밖으로 사라진 그녀에게 더 이상 마음을 전할 수도 없었지만, 말로 다 할 수 없이 너무나 고마웠다. 피부과 진료실에 들어가서 "Pulga, Pulga! (벼룩, 벼룩!)'을 외치며 수포를 보여주고, 되지 않는 영어로 내 고통을 설명했다. 리셉션의 직원도, 간호사도, 의사도 말 못 하는 외국인이 답답할 법한데도 나를 이해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순례길의 대표 도시이고, 그래서 아마 누군가 베드 버그에 물려 병원에 오는 게 그들에겐 낯선 일이 아니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들이 익숙하게 베푼 친절이 그날 나를 구했다.


전날 한숨도 못 자고 숙소에서 출발해, 갑자기 레온에 와서, 병원에 찾아가 진찰을 받고, 약국에 가서 먹는 약과 연고를 사고 나오는 길. 전날 밤부터 계속된 긴장이 풀어지며 그제야 맥이 풀렸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배낭이 너무 무겁게 느껴졌고, 아름다운 도시와 사람들 사이에서 등산 차림으로 서성이고 있는 내가 이상하게 느껴졌을 뿐. 순례길을 걸어 다닐 땐 몰랐는데, 걷지 않는 순례자가 되자 도시에서 혼자 큰 배낭을 멘 내가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다. 병원 가는 길에 지나쳤던 공원으로 돌아가 배낭을 내려놓고 벤치에 누웠다. 고생했다고, 큰 맘먹고 산 디저트는 맛도 없고 돈만 아까웠다. 누워서 흔들리는 나뭇잎을 멍하니 바라보며, '나는 무엇을 위해 이 고생을 하며 길을 걷고 있는지' 답 없는 물음만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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