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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 foresta Feb 19. 2020

슬픔을 구하는 친절

당신의 친절이 날 슬픔 속에서 건져냈던 날

그런 날이 있었다.


늦어진 야근 후 집에 돌아가던 길, 너무 화가 나고 그럼에도 이 일상을 또다시 반복해야 하는 내가 싫어 눈물을 왈칵 쏟아지던 날. 집에 돌아가서 내 불평에 지친 남편에게 더 이상 지친 티를 낼 수도 없어, 그렇다고 괜찮은 척 연기를 하지도 못할 거 같아 집에도 돌아가고 싶지 않던 밤. 길에서 엉엉 울고 싶은데 그러지도 못하고, 어디로 갈지도 모른 채, 그날 퇴근길에 나는 그저 혼자 슬픔 속에 깊이깊이 잠겨있는 기분이었다. 마치 그 슬픔이 목까지 차올라 내가 고개만 담그면 슬픔에 얼굴이 잠겨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만큼.


"빵빵!" 그때 갑자기 뒤에서 자동차 경적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회사 동료가 자동차 창문을 열고 나를 부르고 있었다. "집이 어디야? 태워다 줄게" 우리 집까지는 대중교통으로 한 시간 반 거리. 우울함과 무기력에 잠겨있던 나는 그 한 시간 반의 여정도 소화해낼 자신이 없어 회사 바로 앞 길에서 울기 일보 직전이었다. 가끔 인사만 건네던 그녀였는데 내 상태를 눈치챈 것인지 그녀는 흔쾌히 나를 집 앞까지 바래다주겠다고 했다.


집으로 가는 30분 내내, 집에서도 말할 수 없던 이야기들을 그녀에게 털어놓았다. "요즘 어때? 잘 지내?"라는 한마디로 말을 건넨 그녀는 가끔 내 이야기에 맞장구를 쳐주며, 어떤 조언도 평가도 없이 그저 내 얘기를 차분히 들어주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집에 다다랐고, 그사이 목까지 차올랐던 슬픔은 내 발목께로 내려가  어느새 나는 슬픔에서 발을 빼 밖으로 나올 수 있을 만큼이 되어있었다. "고마워. 오늘 네가 나를 구했어" 동료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말했지만, 나는 그날 그녀를 통해 배웠다. 슬픔에 빠진 사람을 구하는 건 어떤 조언도 지나친 애정도 아닌 '작은 친절'이라는 걸.


돌이켜 보면 슬픔 속에서 나를 구해줬던 건 늘 누군가의 친절이었다. 스페인 산티아고를 걷던 중, 벼룩에 물리고 그때까지 열심히 스탬프를 모아 오던 순례자 여권을 잃어버렸을 때, 바에서 울며 아침을 먹던 내게 아무 말 없이 아줌마가 건네주었던 하몬 한 조각처럼. 슬픔에 빠져 그 무기력 속에서 허우적거릴 때, 힘을 내어 밖으로 나와야 하는 건 결국 나였으나, 내가 밖으로 나올 힘을 준 건 한 줄기의 빛 같은 당신의 친절이었다. 그 친절이 나를 비추고, 내 슬픔을 말리고, 내게 그 슬픔을 뒤로하고 나갈 힘을 내게 해주었다.


그렇게 많은 친절로 슬픔을 이겨내고도 나는 누군가의 슬픔을 위로하는 것 또한 내 작은 친절이라는 걸 이제야 깨닫는. 가끔 누군가 내가 쓴 글에 '힘을 얻는다'라고 할 때에도, 가끔은 과거의 내가 쓴 글에 스스로가 위로를 얻으면서도 나는 사실 무엇을 위해 글을 써야 할지 몰라, 내 글이 무엇이 될지 몰라, 또는 내 글이 무엇이 되는 것이 두려워 글을 쓰지 못했다. 하지만 이젠 알겠다. 나는 내 글이 누군가의 '슬픔을 구하는 친절'이 되었으면 한다. 내 작은 친절이 당신의 슬픔을 구할 수 있다면 부끄러운 글임에도 나는 내뱉을 용기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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