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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기 Jun 23. 2022

불안감을 잠재우는 취미 - 뜨개질

흉내만 낸 수공예

익숙하지만 아는 사람만 아는 재미

드디어 최근까지 즐기고 있는 취미 이야기에 이르렀다. 영화나 만화에서 조용한 생활을 상징하듯 등장하곤 하는 데다가 학교에서 수업시간에 배우기도 하니 뜨개질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만, 뜨개질의 진짜 즐거움을 아는 사람은 그에 미치지 못한다. 뜨개질의 재미는 정적인 시간의 흐름에서 오는 것이라서 나이가 들면서 더 크게 와닿는다.


시작하기에도 쉽다

뜨개질은 오랜 기간 여성들 사이에서 사랑받아온 지라 초보자용 교재도 많고 유튜브 영상도 많은 편이다. 손재주에 자신이 없어 혼자 습득하기 어렵다면 동네 뜨개방을 방문해도 좋다. 뜨개에는 대바늘과 코바늘의 두 가지 방식이 있는데, 초보자에게는 코바늘이 조금 더 쉽다.

재료와 도구에 대한 부담도 적은 편인데, 실과 바늘만 있어도 단순한 뜨개질을 바로 시작할 수 있다. 요즘은 다이소에서도 뜨개질 도구와 뜨개용 실을 구할 수 있다.

뜨개질용 바구니에 상시 구비하는 준비물 - 코바늘, 표시용 고리, 돗바늘, 쪽가위


만들 수 있는 것이 많다

대바늘 뜨개라면 부드러운 옷이나 담요를 짜기 좋고, 코바늘 뜨개라면 조금 더 탄탄한 생활용품들을 짜기 좋다. 처음 도전하기 좋은 목도리나 수세미부터, 작은 주머니나 바구니, 모자와 같은 각종 소품들을 만들 수 있다. 아기자기한 것이 취미라면 인형 뜨기도 좋고 부자재들을 더해 가방을 완성할 수도 있다.

직접 뜬 가방과 차받침, 이북리더기 파우치

뜨개의 코 하나를 단위 하나로 보면 뜨개 기법별 콧수를 이해할 수 있다. 거기다 실의 꼬임 원리를 깨닫게 되면 직접 도안을 만들어볼 수도 있다. 그때부터 뜨개질의 창작 범위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뜨개질을 시작한 건 공황장애로 약을 먹기 시작한 후였다. 처음 먹어보는 약의 기운에 졸리고 멍하다가도 문득문득 심장이 쿵쾅거리고 불안했다. 몸도 약해진 상태라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도 불안감을 더했다. 이대로 아무것도 못하고 식물처럼 가만히 붙박인 채 늙어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할 수 있는 거라곤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는 것 밖에 없나 보다 하고 상심에 빠져들다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는 것으로 충분한 일을 생각해낸 것이 뜨개질이었다.


기억력이 좋지 않은 편이지만 이따금 별 희한한 것을 새삼 기억해내곤 하는 나의 뇌는 어릴 때 배운 뜨개질을 기억해냈다. 엉뚱한 나의 뇌도 가끔은 쓸만하다며 작은 긍정이 시작되었다. 기법에 대한 그림 설명을 보고 따라 해 내는 내 손과 도안을 보고 곧잘 뜨개를 떠가는 내 이해력에 감탄했다. 처음 완성한 수세미를 헌 수세미와 바꿔놓으며 나에게 추가된 생산능력에 뿌듯했다.


들쑥날쑥한 코가 일정해지고 쭈글쭈글 울던 편물이 반듯해지면서 익숙해진 손놀림으로 뜨개질하는 시간에 긍정의 완성이 있었다. 손에 감아쥔 실의 감촉을 느끼면서 코바늘로 잡아 걸고 얽으며 일정한 탄력을 유지하는 데 집중한다.  코 한 코가 반듯하게 짜여져야 완성품도 반듯하다. 허투루 뜬 한 코 때문에 그 이후의 모든 코가 어그러질 수도 있고, 잘못 뜬 부분까지 실을 풀고 다시 떠야 할 때도 있다. 


삶의 시간을 쌓아나가는 것 처럼, 한 올 한 올 엮이는 콧수만큼의 시간이 쌓인다. 모든 시간의 코에 정성을 다하고 서두르다 실수한 시간은 차분히 풀고 하나씩 바로 잡아간다. 성실하게 하나씩 채워나가는 동안 잡념은 사그라들고 몸의 감각은 평온해졌고, 차분하게 흐르는 시간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빨간머리 앤'의 마릴라 아주머니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제니바도 뜨개바구니에 털실을 담고 조용히 뜨개질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나이 든 여성의 상징처럼 쓰인 것은 늙고 약해진 여성도 할 수 있는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활동인 동시에 그들이 소중하게 찾아낸 평온하고 성실한 삶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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