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친구의 카톡
[하루단상] 멀지만 닿아있는, 언제나 아련한 사이
얼마 전 일이다. 평소처럼 저녁을 먹으며 적당히 틀어 둘 TV 프로그램을 찾느라 리모컨을 눌러대는 중에 카톡이 하나 왔다. 오래된 친구의 생일 축하 메시지와 기프티콘이었다.
언젠가부터 생일은 어르신들 챙기는 날이 되어버린 걸까. 내 생일을 기억하고 특별히 의미 두며 보낸 지가 너무 오래되어 기억도 나지 않는다. 새삼 축하 문자에 선물까지 받고 보니 가슴 쪽이 간질간질하고 영 어색했다.
친구도 매년 서로 생일을 챙겨주거나 하는 사이는 아니었다. 그저 1~2년에 한 번씩 연락하고 기회 되면 얼굴이나 보는 정도의 관계. 그럼에도 나에게는 친구이고, 그 녀석에게도 나는 친구였나 보다.
친구의 아이가 중학교 1학년이 되었다고 했다. 우리가 처음 만난 것도 중학교 1학년의 교실에서였다. "너랑 친해지고 싶어"라고 대놓고 말하는 아이는 이 친구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예쁘고 잘 사는 집 아이인 티가 났고 순정만화에 열광하는 소녀 그 자체였던 아이가, 선머슴 같고 거칠고 예민하기만 한 나랑 왜 친해지고 싶었는지는 아직까지도 미스터리다. 어쨌든 우리는 그렇게 친해졌고 한참을 둘이서 붙어 다녔다.
지독하게 맞이한 중2병 덕분에 더욱더 까칠해진 내가 냉소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동안에도 친구는 그저 안타까워하며 곁에 있어주었다. 마음을 어둠 속에 몰아넣고 있던 나에게 친구는 너무 해맑고 순수한 나머지 답답하고 바보 같아 보였다. 고등학교를 다른 학교로 진학하면서 자연스레 서서히 멀어졌습니다...라고 정리하고 싶지만, 우리가 멀어진 건 명백히 내 잘못이었다.
대학생이 되고 직장인이 되고 각자의 생활이 생기고 새로운 친구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되었지만, 몇 년에 한 번씩이라도 꼭 만나곤 했고 만나면 온갖 감정이 들었다. 이 험한 세상에 순진한 친구가 다칠까 안쓰럽기도 하고, 생각보다 잘 헤쳐나가고 잘 꾸려나가는 삶을 보면 대견하기도 했고, 그 모든 과정을 같이 하지 못하는 딱 이 정도의 사이로 만들어버린 게 미안하기도 했다.
그 여리고 여리던 아이가 씩씩하게 사회생활을 해나가고 결혼도 먼저 하고 아이도 키워냈다. 얼마나 많은 일들을 겪었을까, 어떤 아픔들을 이겨내 왔을까 상상해본다. 아니, 친해지고 싶다며 수줍게 마음을 보여주던 아이를 배신했던 내가 짐작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지금에야 보이는 것 하나는, 이 친구는 나보다 성숙하고 용감하다.
기프티콘이란 걸 쓸 줄 몰라서 그동안 누가 기프티콘을 보내줘도 그냥 두고 말았는데, 이번엔 약간 용기 내서 기프티콘도 써보려고 한다. 하지 않던 일을 시도하는 극소량의 노력으로 멀지만 여전히 닿아 있음을 느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