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기 Jul 09. 2021

나는 가끔 힙합을 듣는다

[조금더행복] 취향이 흐르고 흐른다

혼자서도 기분전환하기 간단한 도구중 하나는 음악이다. 잘 맞는 음악 하나로 우울한 기분을 덜어내거나 좋은 감정을 유지할 수 있다. 너무 슬프고 힘들 때는 더 격렬한 음악으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도 있다.


일이 바쁘던 시절에는 음악 찾아 듣기도 참 힘들다 생각했는데, 막상 여유가 생겨도 최애 플레이리스트는 실시간 인기차트 100곡이 되었다. 게으름의 결과다. 쭉 듣다 마음에 쏙 드는 노래가 있으면 따로 저장해 두고 가사도 한번 읽어보곤 하면서 수집욕구도 채워본다.


요즘은 옛날 노래를 리메이크하는 게 유행인지 익숙한 노래들이 많은데, 옛날 사람이지만 요즘 노래가 더 좋다. 옛날 노래들은 추억으로 듣는다던데, 내 추억들은 아프기만 해서 나는 옛날 노래보다 요즘 노래가 더 좋다. 옛날 노래들에 추억이 별로 없기도 하다. 어린 시절 홍대병 중환자였던지라 예전에 자주 듣던 음악들은 지금도 일부러 찾아내지 않으면 듣기 힘들게 숨겨져 있는 곡들이 많고, 그 시절에도 혼자 듣던 노래들이라 별다른 추억이랄 게 없다. 외롭고 혼란스러웠던 젊은 고통만 기억날 뿐.


나만 아는 노래, 주로 펑크와 락만 찾아 듣던 습관은 극한 노동 중에 들려온 여자 아이돌 그룹의 댄스음악 덕에 완치되었다. 어지럽고 지쳐서 주저앉으려는 몸뚱이를, 그동안 유치하다며 평가절하해왔던 아이돌 음악이 덩실덩실 일으켜 세워  힘을 내게 만드는 기적을 경험한 것이다. 그 이후로 더 나은 어떤 특별한 음악들을 선별해 듣는 취향에 대한 고집을 버렸다.


듣는 이가 있는 모든 음악은 옳다.


다양한 취향의 음악들을 마음을 열어두고 듣는다. 나만의 취향은 나날이 흐르고 변화한다. 그리고 마흔이 넘은 나이로 힙합을 듣는다.


한때 TV 쇼에서 어린 래퍼들의 과한 옷 장식과 돈 자랑들, 소위 스웩이라 불리는 것들을 보면서 우스꽝스럽다고 여기기도 했다. 니들이 뭘 안다고. 헌데 가만히 들어보면 느껴진다. 이 아이들도 많이 아프고 힘들었구나. 나의 지금과는 많이 다르고, 나의 청춘과도 조금 다르지만, 요즘 아이들도 나의 그때만큼이나 아파하고 무엇이 옳은지, 이렇게 사는 게 맞는지 혼란스러워하는 것이 그대로 들려온다.


세상을 조금 더 나아지게 하려는 시도들은 그 실행자들이 청춘일 적 가졌던 고민들이 중심이 되는 법이고, 그러니 언제나 한두 발짝 늦게 마련이다. 그래서 청춘은 언제가 가장 먼저 피해자가 되고 만다. 어느 시절이 더 편했는지 무슨 소용일까. 누가 더 어려운 상황을 겪었는지 무슨 소용일까. 세상에 쉬운 게 하나도 없다는 건 언제나 똑같고, 나도 아팠고, 너도 아프구나. 날것으로 쏟아내는 독백과 외침들을 좋아하며 공감하는 많은 저 어린 사람들도 많이들 아팠구나.


그러니 센 척도 해보고 쿨한 척도 해보고 소리지르기도 읊조리기도 하면서 비트에 맞춰 풀어내야지 어쩌나. 한 곡 신나게 놀아버려야지 어쩌나. 실은 한치도 자라지 않은 내면의 어린이가 같이 놀자고 부추긴다. 이렇게 가끔 나는 힙합을 듣는다.


작가의 이전글 이웃 고양이와의 호감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