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기 Jul 05. 2021

이웃 고양이와의 호감작

반려하지 않는 아는 고양이

집 앞 화단에 고양이들이 보이기 시작한 지 며칠 되었다. 해가 지고 어두울 때 주로 보이지만 한 날은 낮부터 얼굴을 보여주길래 급히 휴대폰을 들고 사진도 한 장 찍어두었다. 아기 티를 벗기 시작한 어린이 고양이인 까만 얼룩이, 회색 얼룩이, 흰둥이 세 마리가 같이 다니는데, 회색 얼룩이가 볕을 쬐며 몸을 말리는 중이었다.


산책길에 일부러 고양이들이 많은 길을 찾아다닐 만큼 고양이를 좋아하는 편이지만 어린 고양이들이 같이 다니는 광경은 처음이라 신기하고 더 이쁘게 다가온다. 세 놈 중에 까만 얼룩이가 여기저기 먹이를 구하는 듯 열심히 돌아다니는 동안 회색 얼룩이는 풀숲에 가만히 숨어 있다가 까만 아이 쪽으로 가보기도 하고 흰둥이 근처로 가보기도 한다. 흰둥이는 호기심이 많은지 사람 인기척에도 놀라지 않고 기웃기웃 쳐다보다가 가까이 가면 그제야 폴짝 뛰어 회색이 옆으로 숨는다. 어미는 어디를 갔는지 보이지 않지만 셋이 모이면 뒹굴고 비비며 노는 모습이 서로 의지하며 잘 지내는 중인가 보다.


근처 벤치에서 스트레칭 운동을 하면서 구경하기로 했다. 묘하게 사람들 시선이 잘 닿지 않아서 평소에도 운동하는 장소로 이용해오던 곳인데, 고양이들이 주로 노는 구석진 자리가 잘 보였다. 혹시나 놀랄까 봐 평소보다 느린 동작으로 운동을 하는데, 흰둥이가 빼꼼히 고개를 내밀고 쳐다봤다. 팔을 들었다 내렸다 하는 꼴이 고양이 눈에 희한해 보였는지, 다른 놈들도 불러와서 같이 구경하게 만들고는 지나갈 일이 있는 척, 내 발 앞까지 와서는 흘깃, 또 뒤쪽으로 돌며 흘깃 쳐다봤다.


고양이를 구경하다가 고양이들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다.


몇 번 눈인사를 깜박깜박 마주했다고 알아보는 건지, 이제 내가 근처에 있어도 잠깐 경계만 하다 말고 도망가지 않는다. 슬슬 먹이라도 구해와서 내가 주는 먹이를 받아먹는 모습을 즐기고 싶은 욕심이 구물구물 올라오지만, 참기로 한다. 사람이 많이 사는 동네다. 별별 사람이 다 있을 테고, 고양이들과 친밀해지는 기쁨을 누릴 내 얄팍한 욕심에 사람 무서운 줄 모르는 고양이들로 만들어 위험에 빠뜨리고 싶지 않다.


항상 지켜보며 보살펴줄 여력도 없으니 적당히 거리를 두고 가끔 인사나 하고 지나칠 뿐인 사람과 고양이의 사이지만 어딘지 몰라도 근처에 사니까 이웃이다. 그저 이웃인 고양이들이다. 어설픈 수준의 감상으로 연민하고 간섭하기보다 고양이로서의 생을 응원해주기로 했다. 그 생이 험할지도 고통스러울지도 어쩌면 자유로울지도 짐작하지 않기로 했다. 그저 지난번 폭우를 잘 지나왔듯이 몸 피할 곳 잘 찾아서 장맛비에 너무 젖지 않았으면 좋겠다.


날 좋을 때에 또 만나자. 사람 구경하러 오렴.

작가의 이전글 가난이 죄는 아니지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