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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기 Jul 30. 2021

관찰 그 자체의 즐거움

오래 볼수록 재미지다 관찰하라

덩치가 조그마할 적 이야기지만 개미들이 일렬로 다니는 걸 한참 동안 보고 있곤 했다. 예전에는 골목마다 포장이 안된 길이나 공터가 종종 있어서 개미야 흔했지만 줄 지어 꼬물거리는 개미는 보는 재미가 달랐다. 무언가 이고지고 나르는 개미들의 행렬을 끝까지 따라가 보면 구멍이 나타나고, 또 다른 줄이 이어져 있고, 조금 떨어진 곳에 다른 구멍이 있기도 했다. 개미굴이 어디서 어디까지일까 가늠해보기도 하고, 개미 한 마리만 골라 따라가보기도 하고, 개미들이 나르는 갖가지 부스러기들을 구경하기도 하고, 개미굴을 들고 나는 개미들 수를 세어보기도 했다.


어른이 되고는 길거리에 쪼그리고 앉아서 땅바닥이나 보고 있는 모양새가 우습기도 하고, 무릎 관절도 도와주지 않는 관계로 개미는 놓아주었다. 대신 산책하는 남의 집 개와 동네 고양이들을 보거나 운이 좋으면 새를 본다.


관찰 그 자체로 재미를 느끼기 위해서는 되도록 자세히, 가능한 오래 보아야 한다. 잠깐 보았다고 다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얼핏 보았을 때 배가 나와 뚱뚱한 고양이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임신 중일지도 모르고, 오래 지켜보면 아파서 붓거나 복수가 찬 고양이일 수도 있다. 털의 윤기와 움직이는 모양새, 경계심의 정도, 울음소리, 그 밖에 확인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관찰하고도 몇 날 며칠을 더 보아야  알 수 있는 것들도 있다.


관찰 중에는 가급적 관찰자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편이 좋다. 지켜보다 문득 내가 무언가 해주고 싶을 때가 있게 마련이다. 혹은 내가 접근하거나 건드렸을 때의 반응을 보고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내가 개입하는 순간 자연스러운 상태는 이미 무너지고, 나에게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받아 반응한 모습들을 봐야 한다. 내가 영향을 주었다면 이후의 일들에 책임이 생긴다. 그렇지만 관찰이 끝나지 않은, 아직 다 알지 못하는 대상에 대해서는 무엇이 나로 인한 결과인지 아닌지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이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그럼에도 나서게 되는 때가 있긴 하지만, 되도록 조심하려고 한다.


관찰 대상에 대한 판단이나 평가는 하지 않아도 좋고, 하더라도 최대한 미룬다. 잠깐 본 것 만으로 귀엽다고 좋아할 수는  있지만, 그걸로 끝난다면 더 이상 관찰할 흥미도 사라진다. 쉽게 결론 내릴수록 쉽게 질리고, 직관적인 척 하는 오해쟁이가 되기 쉽다. 둥지에서 떨어진 새끼 새를 보자마자 불쌍하다고 여기면 냉큼 주워다 집에 데려오는 개입을 하게 된다. 옆 나무 위에서 사람이 사라지기만 기다리던 어미새를 보지도 못하고 말이다. 내 주관을 기준으로 해석까지 더해버리면 판단과 평가는 대상에게 해가 되기도 한다.


건드리지도 않고 해석하거나 판단하지도 않고 말 그대로 오랫동안 가만히 관찰만 하는 게 뭐가 재밌냐고? 언제나 무엇인가를 해야만 할 것 같은, 무언가 하지 않는다면 지루하거나 불안해지는 강박에서 벗어나는 자체가 재미다. 가까이 가고 싶고 쓰다듬어보고 싶은 욕구를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는 즐거움도 덤으로 얻는다.


한 가지 해야 하는 게 있긴 있다. '기억하기'이다. 자세한 생김을 기억하고, 움직임과 흐름을 기억하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들을 기억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메모해두는 것도 좋다. 기억해두면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저녁마다 산책하는 갈색 개는 성질이 더러워서 짖는 게 아니라 겁이 많은 편이라 조금 전 지나간 할아버지의 지팡이에 놀라서 짖는 것이고, 줄무늬 고양이가 왔다갔다 하는 건 평소에 늘 먹이를 구하러 가던 길에 못 보던 장애물이 있어서이고, 새가 지저귀는 건 노래하는 게 아니라 까치들이 둥지 근처에 접근해서 경고하는 중이라는 것, 이런 것들을 관찰 끝에 알 수 있다.


말하자면, 관찰의 즐거움은 앎의 즐거움이다. 새로운 것을 알게 되고, 알던 것을 더 자세히 알게 되는 즐거움이다. 고요한 쾌락이다.


동물들이 없으면 나무와 풀을, 날이 좋을 때는 하늘의 구름을 본다. 자연물을 접하기 어려울 때에도 도로와 인파의 흐름을 관찰하거나 건물의 구조와 부속물들을 살펴볼 수 있다. 들으며 관찰할 것들도 많다. 감각기관들이 제 역할을 잘해주기만 한다면 관찰할 것들은 넘쳐난다. 돈도 들지 않는 가성비 최강의 취미다.

주의 : 사람을 관찰할 때는 예의에 어긋나거나 범죄가 될 정도 선을 넘지 않게 주의해야 한다.
외모를 뚫어지게 보는 것은 자제할 것.
사람인 상대가 스스로 보여주거나 들려주지 않은 것을 임의로 훔쳐보거나 엿들으려 하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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