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곤하면 잠이 든다는 말을 불면증을 겪어본 사람은 증오할 것이다. 피곤하지 않아서 잠이 안 오고 더 피곤해지면 잠이 드는 사람은 아마도 아직 정상범위 내에 있다고 보인다. 불면의 문제가 심각해지면, 정말 피곤하고 기절할 것 같은 상태가 쭉 유지된 채로 잠들지 못한다. 잠시 기절하듯 잠이 드나 싶다가도 귀신같이 다시 깨서 뒤척거리게 된다.
불면의 밤이 괴롭혀온지 10년이 가까워오고 있는데 최근 몇 주간은 놀라울 만큼 잘 자고 있다. 잘 수 있었던 정도가 아니라 아주 깊게 숙면하는, 말 그대로 꿀잠을 잤다. 어떻게 꿀잠을 되찾을 수 있었을까, 뭐가 바뀌었을까. 매일 똑같은 환경과 똑같은 사람과 지나치리만큼 똑같은 일상 속에 달라진 그것, 바로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이다.
브런치에 글이나 써볼까 생각하면서 숙면을 목표로 한 적은 없다. 그냥 시끄러운 머릿속을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글쓰기가 적당하겠다 싶어서 글을 쓸 적당한 공간을 찾았을 뿐이다. 그냥 적당해 보이는 곳에서 적당히 써보았는데 꿀잠을 얻었다.아무튼, 그랬다.
일상이나 감정에 대한 에세이를 처음 쓰다 보니 쉽기만 한 건 아니다. 글이야 이래저래 많이 쓰며 살긴 했지만 보고서나 법률서류들 위주로 써왔던 터라 내 속을 풀어내는 글을 쓰는 일이 어색하기 짝이 없다. 수시로 한없이 딱딱해지려는 문장들을 마사지해주다 지쳐서 아예 장난치며 말하듯이 쓰기도 해 보고, 열심히 쓰고 보니 내가 담고 싶은 의미와 멀어진 것 같아 다 지워버리기도 했다.
가장 어려운 건 솔직하게 쓰는 것이다. 머릿속을 두드리고 생각을 정리하는 중에도 모자란 점은 못 본 체하고 예쁜 점만 보고 싶은 욕심이 여기저기 끼어들곤 한다. 열심히 정리하고 키보드 자판을 두드리는 찰나에도 멋진 척하려 하거나 공감받기 좋게 표현하려는 잡념들이 방해하곤 한다. 진심으로 내가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내가 생각하는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은 내 안의 모든 척척을 걷어내는 작업이다. 어디까지가 척척이고 어디까지가 나 자체인지도 헷갈리곤 하니 솔직하게 글쓰기는 참 어렵다.
그럼에도 가능한 한 솔직하게 쓰려고 애쓰며 글을 쓰고 나면 적어도 써낸 내용에 대해서는 머릿속이 정리가 된다. 퇴고를 거치다 보면 나라는 인간은 딱 요만큼 못났구나, 딱 이만큼 쓸 만 하구나. 지금 이 정도는 성장했구나 하는 걸 확인할 수 있어서 안정감이 든다. 적당히 낙서하듯 그림까지 그려 발행 버튼을 누를 때는 후련하기까지 하다. 머릿속에서 빠글거리던 생각들을 떼어다 잘 정리해서 무엇인가 만들어냈으니 한결 가볍다.
가벼워지니 잠이 잘 드는 걸까. 요즘은 잠들기 전에 불안하지도 않고 잠자리에 예민해지지도 않는다. 글쓰기의 수면제 효과가 언제까지 갈지는 몰라도, 계속 글을 쓰며 더 가벼워지려 한다. 글을 쓴다는 것, 이 마지막 문장을 치는 키보드의 작은 타격음이 즐겁다.
이 글을 쓰자마자 다시 잠 못 들고 뒤척이기 시작했다. 이건 내 문제가 아니다. 절대 아니다. 장담할 수 있다. 범인은 따로 있다.
열대야.
이 무서운 놈에겐 당해낼 수가 없다. 야밤에 에어컨을 켜는 건 져버리는 기분이라 선풍기로 버텨내고 있는데 그렇다고 이긴 기분은 아니라 불쾌하다. 아주 무서운 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