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할 때는 이어폰을 쓰지 않는다. 운전을 하거나 일을 할 때 음악 틀어두는 편을 더 좋아하지만 산책할 때는 음악을 듣지 않는다.
가벼운 운동화를 신고 작은 가방에 휴대폰과여행용 티슈 정도만 챙긴다. 비염이 있어 언제 콧물이 흘러내릴 지몰라 티슈를 빼놓을 수 없는 건 조금 애석하지만 가벼워서 그런대로 봐줄 수 있다.
운동화 바닥이 타박타박 바닥을 딛는 소리를 듣는다. 소리가 가벼워지라고 발끝에 무게를 주며 걸어본다. 규칙적인 발소리가 경쾌해질 때쯤, 먼저 디딘 발을 뒤로 조금만 힘차게 뻗어본다. 허벅지와 엉덩이가 당겨졌다 풀어지는 게 느껴진다. 상체는 벌써 흔들리며 말랑말랑해져 있으니 배를 밀어 넣고 가슴을 위로 끌어당기는 느낌으로 긴장을 준다. 어깨가 벌어지면서 자연스레 앞뒤로 흔들리는 손끝은 살짝 오므려준다.마스크가 없다면 볼을 타고 흐르는 공기가 느껴질텐데 조금 아쉽다.
이제 귀를 조금 더 열어본다. 나뭇잎에 스치는 바람소리, 건너편 도로의 자동차 소리를 배경 삼아 동네 꼬마 아이들이 뭐가 그리 재미난 지 꺅꺅대며 노는 소리가 들린다. 게 중에 한놈은 소리를 지르는데 약이 올라있나 보다. 배달 오토바이의 어딘가에서는 누구한테 하는지 모를 어떤 남자의 목소리가 바삐 흘러나온다. 버스를 기다리던 여학생끼리 못된 아이 한 명을 두고 설전이 벌어졌는데, 남의 험담을 몰래 듣기는 미안하지만 다 들려버렸다. 가게 앞에 장바구니를 들고 선 아주머니가 물건들을 가리키며 이것저것 물어보는데 더위에 지친 상인은 부채질만 한다. 상점가의 가게마다 틀어놓은 음악소리가 겹쳐져 칠해진 골목을 지나는데 "앙! 앙앙!" 소리에 깜짝 놀라 내려본다. 작고 예쁜 강아지의 주인이 곤란한 얼굴로 목줄을 당기며 연신 "안돼, 안돼애애" 한다. 나는 속으로 '괜찮아, 괜찮아아아' 해본다. 강아지도 본 김에 좁은 골목길 구석에서 자주 만난 고양이도 찾아본다. 오늘은 안 보이나 싶은 찰나, 옆 주택의 낡은 철문 아래로 유연하게 빠져나온다. 여간해선 울지를 않는데, 언젠가는 그놈 야옹 소리를 한번 들어볼 테다.
사람 사는 곳은 살아가고 있다는 증명인 양 소리들이 넘쳐난다. 시끄러운 딱 그만큼 많이들 살아가고 있다. 들을 소리가 많아서 산책할 때는 이어폰을 넣어둔다. 나도 타박타박 발걸음 소리로 살아있다 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