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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기 Aug 24. 2021

능력도 없는 게 떵떵거리는 세상은 불공평한가 (2)

재력이 권력이 되는 데 대한 분노

앞선 글에 이어서...



어째서 재력에 권력이 생기는가


내가 어릴 때는 해외여행이 흔하지 않은 일이라, 방학이면 미국 이모네 집에 다녀오는 동네 남자아이는 개학 시즌마다 슈퍼스타가 되었다. 미국에서 가져온 연필과 샤프, 과자들을 학교에서 책상 위에 풀어놓으면 다들 한번 만져보고 싶고, 맛을 보고 싶어서 안달이었다. 남자아이 마음에 들게 굴면 연필 한 자루 정도 나눠주기도 했는데, 그걸 받으려고 온갖 알랑방귀들을 꼈다. 그러다 나와 같은 반이었던 해 여름 방학이 끝나고 학교에 갔을 때였다. 어쩐 일인지 그 아이 책상 주변에는 두 세명의 친한 친구뿐, 죄다 다른 아이 책상에 모여 있었다. 겁 많고 조용한 편인 그 아이의 책상에는 작은 플라스틱 채집통과 그 안에 든 개구리가 있었다. 한 번만 만지게 해 달라는 아우성에 아무나 함부로 만질 수 없다며 채집통을 안아 든 아이의 얼굴이 전에 없이 당당했다.


가진 자가 힘을 가지는 피할 수 없는 순간들이 있다. 내 집을 소유한 자가 집세 인상을 요구할 때, 내가 일할 장소나 설비나 일거리를 갖고 있는 자가 일을 중단시키거나 일의 대금을 조정하려 할 때, 나의 물건이나 서비스를 구매할 돈을 가진 사람이 구매 여부를 결정할 때 등이다. 이런 상황에서 재력이 가진 힘을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은 평범한 현대인 중에는 없을 것이다. 살 집이 필요하고 생활비를 벌어야 하기 때문이다. 현대사회에서 재력은 권력이 맞다. 그리고 그 권력은 재화 일부를 우리가 가져야만 생존할 수 있기 때문에 시작된다.


이 당연한 관계가 지나치게 확대되고 절대적으로 취급되면서 재력은 일반적인 권력을 취득한다.  삶에 직접적으로 관련되지 않은 부와 재력에 대해서 부러워하고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 하고 그렇지 못하여 시샘하거나 분노하곤 한다. 이것이 부자로 하여금 상관없는 다수에 대해서까지 영향력을 미칠 수 있게 하고 힘이 되어버린다. 뒤집어보면, 아무도 탐내지 않는다면 아무런 힘도 가지지 못한다.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것들에까지 지나치게 욕망하여 공급하는 자들과 먼저 가진 자들에게 힘을 부여한 것은 누구인가. 나는 아닌데, 나이기도 하다.


부의 분배가 공정하지 않았다거나 부의 축적 과정에 착취의 요소가 필연적으로 따른다는 정치경제학적인 측면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그 결과로써의 가진 자에 대하여 다시금 위상과 힘을 부여하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재력이 권력이 되고 세습되는 것은 정당한가


재력이 그 자체로 권력이 되는 것은 사실 위험하다. 재력이 가진 힘은 재력을 보전하고 확대해야 유지되는 힘이다. 모든 재화는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이것은 다른 이들이 부를 얻지 못하고 심지어 더욱 착취당하는 방향이기도 하다. 따라서 재력의 힘이 커질수록 그리고 마음대로 힘을 행사할수록 가지지 못한 많은 이들은 더욱 갖지 못하고, 심지어 가지고 있던 것도 내놓아야 한다.


지위에 따른 권력은 지위를 잃는 순간 사라지므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위 유지에 필요한 것들을 추구하게 된다. 그것은 직업적 능력일 수도, 세상의 흐름을 파악하고 분석하는 판단력일 수도, 사람들의 호감과 신뢰를 얻는 인격적 노력일 수도 있다. 그리고 상속해주기도 어렵다. 확률적으로 낫기야 하겠지만.


하지만 재력에 따른 권력은 재력만 유지하면 그만이기 때문에 다른 중요한 가치들을 희생하는 것에 무감각하기 쉽다. 세습은 간단하다. 법으로도 세금이라는 보호비만 내면 안전하게 보장되고 있다. 부와 권력이 부모에게서 자식으로 상속될 수 있다는 건 신분제나 다름없다. 신분제가 익숙해지면 신분간의 관계에서 동등한 인간 사이의 존중과 배려가 사라지는 것은 너무 쉽다. 그러니 재력이 곧바로 권력이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가진 게 별로 없는 자의 입장으로서, 부의 권력을 경계하고 비판적인 자세로 대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피할수없이 생긴 부의 힘들로도 충분히 위험한데, 그에 더하여 쓸데없는 힘까지 주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에게 불필요한 재력들에 영향받거나 종속되기를 거부하는 편이다. 애초에 나의 것이 아닌 것들, 내 삶이 아닌 것들에 대해 관심 주지 않고 있다.



부자는 비판받아 마땅한가


근데 이건 또 다른 이야기다. 다른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부자가 그 재력의 힘으로 다른 사람을 해하거나 법을 위반하거나 처벌을 회피한다면 비판받아 마땅하다. 행위 자체가 비판받을 일이니까. 재력의 힘을 공고히 하기 위해 교묘하게 룰 자체를 바꾸려 하거나 도덕적 가치들을 왜곡하려 하거나 사람들을 조종하려드는 것도 비판받아 마땅하다. 사회공동체 구성원 전체에게는 해가 되는 일이니까.


하지만 부자가 재력을 확보한 그 자체만으로 부자인 개인을 비판하는 것은 무리다. 그보다는 자본주의적 체계를 비판하거나 재력을 숭배하는 풍토를 경계하는 편이 낫다. 부자는 이 체계와 풍토 속에 그저 살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 체계와 풍토는 부자들끼리만 만들고 있는 게 아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횡포를 부리고 나쁜 짓만 하는 부자는 사회적 폐해로써의 의미를 가진다. 부자가 재산을 공동체에 기부하거나 약자를 돕거나 하는 일들은 개인 차원에서 체계의 문제를 극복하려는 시도로서의 의미를 가진다. 그저 부자일 뿐이기만 한 사람은 빈자와 마찬가지로, 오른손잡이와 왼손잡이처럼, 특별한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날라리였던 친구가 나쁜 짓이라도 했다면 신고하고 비판하겠지만 느닷없이 깨달은 자가 되어 상속을 거부한다거나 기부천사가 되는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의 삶이니까. 가 돈 많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인생이라면, 나도 배움의 즐거움과 다양한 문화적 유희를 알려준 꽃수저를 문 인생이다.


것이 정의롭지 않다고 생각하는 건 자유겠지만 나에게 동의를 요구하고 같이 화내라고 강요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솔직하게 까고 보자면, 나나 특정 인물 께서나 시험용 공부 조금 잘한 것뿐이지 비상하게 똑똑한 사람들도 아니고, 존경스러울 만큼 성실했던 적도 없다. 우리 그냥 또래들보다 아주 조금 두뇌 발달 빨라서 성적이 좋았던 거고, 무난한 가정에다 인생에 별 탈이 없어서 대학 가고 시험 치고 자리 잡은 거다. 대한민국 전체로 보자면 우리는 이미 운 좋게 부모님 덕도 보고 편히 잘 자란 사람들이다. 그걸 인정해야 삶을 살아가고 있는 주변의 진짜 사람들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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