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어느 집에선가 뚝딱뚝딱 망치질 소리가 들려온다. 망치질 소리에 시끄러워 불쾌감을 느끼기보다는 혹시나 또 새로운 집이 이사 오는 건 아닌지 불안감부터 느낀다. 새로 이사 오는 집은 또 층간소음을 낼 테니까. 아니면 또 층간소음을 느끼고 화를 낼 테니까.
처음 이 집에 이사 왔을 때 나도 그러했다. 망치질 소리가 끝나나 싶으면 발망치 소리가, 그다음엔 마늘 빻는 소리가, 그리고 러닝머신인지 안마기인지 알 수 없는 규칙적으로 쿵쿵거리는 중저음의 울림이 이어져서 안 그래도 불안한 상태가 더 심해지곤 했다. 그 무렵에는 공황상태는 심각했으나 아직 병원도 찾기 전이었고 허리 통증도 극심했던 때라 소리들을 벗어날 도리도 없이 침대에 누운 채로 몇 날 며칠을 그대로 듣고 있어야 했다.
그러던 중에 아랫집 남자가 찾아왔다. 조용히 좀 하라며. 나는 침대에서 현관문까지 걸어오는 것조차 힘들어 대부분을 누워 지내는데 무슨 소리냐고 항변했다. 남자는 우리가 이사 온 이후로 시끄러우니 우리 집이 맞단다. 아무튼 조심하라고 하니 아무튼 조심하겠다고 했다.
그러고도 쿵쿵 소리는 계속되었다. 며칠 뒤에 남자는 한 번 더 찾아왔고, 쿵쿵 소리는 계속되었고, 소리가 날 때마다 벽을 쾅쾅 치는 소음이 추가되었다. 그리고 쾅쾅 치는 소음이 거듭되자 반대편에서 딱딱딱 두드리는 소음도 더해졌다. 왕래가 없는 이웃들이 소리로 소통이라도 시작한걸까. 누가 치는 건지 알 수는 없지만, 나는 불안감에 공포까지 안고 지내야 했다.
어디선가 소음이 나면 또 아랫집 남자가 찾아와 화낼거라는 생각부터 들고 무서워서 잠도 잘 수 없었다. 밤에도 소음은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공황장애가 더 심해져서 내 발로 병원까지 찾아갈 수 있었으니 고마운 일이라 여겨야 될까.
나도 윗집을 찾아간 적이 있다. 내가 가만히 있는 동안 들리는 그 소음 - 아랫집 남자까지 화나게 만든 - 이 우리 윗집의 소음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찾아갔을 때, 윗집은 부재중이었다.
나중에 건물 전체로진행된 공사를 할 때 한 가지 알게 되었다. 이 낡은 복도식 아파트는 윗집 소음만큼 아랫집 소음이 크게 들린다. 위아래 소음만큼, 가끔은 더한 수준으로 옆집의 그 옆집의 또 그 옆집의 바닥 소음이 들린다. 대각선 집의 공사 소리는 아래 윗집 소음과 별로 구분도 안된다. 몇 층이나 떨어진 집의 인부들 발소리도 들린다. 노동 중인 사람들의 거친 발소리는 평소의 발소리들과 비교도 되지 않게 웅장한 소음이었다. 애초에 그런 건물이었다.
공사 이후로 소음들은 오히려 전체적으로 줄어들었다. 소음이 심한 건물이라는 것도, 어느 집 소음인지 확신하기 어렵다는 것도, 보복 소음을 내봤자 소용없다는 것도 나만 깨달은 게 아니었던 것 같았다. 아랫집 남자는 얼마 후 이사를 갔다.
그리고 새로 이사 온 아랫집의 더 나이 많은 남자가 찾아왔다. 조용히 좀 하라고. 소음이 여러 방향으로 퍼지는 건물이라고 설명해봐도 안 믿길래 그냥 조심하겠다고 했다. 내가 지금보다 더, 더 이상 조용하려면 죽어야 되나 싶을 정도로 조용히 지내봤자 딱히 아랫집이 조용해지진 않겠지만.
우리 집에도 그 소음들이 들리고 아랫집에서 나는 소음도 참고 살고 있지만, 베란다로 들어오는 담배냄새도 참고 살고 있지만, 어느 집인지 새로 온 강아지 짖는 소리도 참고 살고 있지만, 아랫집에서 나를 죄인으로 확정한 이상 나는 죄인이다.
층간소음에 관한 글들을 보면 다들 너무 예민하다. 소음에 계속 시달리면 힘든 건 내가 제일 잘 안다고 자부할 수 있다. 아랫집 항의에 오히려 스트레스받는 것도 미치는 일인 거 겪어봐서 알 것 같다. 끼인 자의 입장에서, 슬리퍼를 신거나 바닥에 뭔가 깔아 두거나 소음을 줄이려고 노력하는 것도 맞고, 어느 정도 소음은 좀 감수하고 내 귀를 막는 편이 나은 것도 맞다. 그리고 그래 봤자 건물 자체가 안 따라주면 완전히 해소될 수 없는 문제인 것도 맞다.
그러니 언제까지 아랫집, 윗집, 건설회사 탓만 하면서 화만 낼 거냐고요. 적당히들 화내시고 나도 좀 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