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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기 Aug 24. 2021

능력도 없는 게 떵떵거리는 세상은 불공평한가 (1)

공부 잘하는 성실함에 대한 보상

미리 말해두는데, 이 글은 사회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굉장히 사적인 글이다. 어떤 유명인이나 정치집단이나 뭐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특정 인물에게 못다 한 개인적인 이야기이다.


특정 인물은 나에게 말했다.

"그렇게 공부하고 열심히 살아놓고 지금 이렇게 사는 게 억울하지도 않냐? 쌩 날라리이던 OO이는 부모덕에 XXX 되고 잘난 척하며 살던데, 이게 맞냐? 넌  화도 안 나?"


새로 알게 된 맛집 이야기나 응원하게 된 <슈퍼밴드2>의 음악가 이야기 따위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 지라 대충 넘겼던 대답을 한 번은 하고 싶다. 나는 전혀 억울하지 않고 화나지 않았다.



공부 잘한 아이가 잘 사는 것이 일반적인


흔히 학창 시절에 공부하라는 잔소리와 함께 붙어 다니는 말들이 공부를 잘해야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업을 가지고 좋은 배우자를 만나고... 뭐 이런 엘리트 인생코스론과, 공부 잘하고 학력이 좋은 건 성실함과 명석함이 인증되는 것이니 좋은 직업과 부는 그에 대한 보상으로 주어지는 것이라는 엘리트 인생 코스의 당위성(이건 공부 잘한 아이들이 더 많이 듣는다)이다. 조금 더 천박하게는 못살고 험한 일 하는 사람들은 니 나이 때 공부를 안 해서 그런거다라는 느닷없는 원죄론까지 있다.


아이들의 학습의지를 고취하고자 뿌린 이 말들을 성인이 되면서 벗어날 수 있으면 다행인데, 중년이 되도록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도 종종 보인다. 그리고는 자신의 자녀에게 똑같은 말을 한다. 내가 본 바로는 공부를 잘했고, 결국 엘리트코스에 올라탄 사람들 중에 자주 보인다. 사회적으로 참 똑똑하고 현명할 것 같은데 막상 본인의 자녀들에게까지 속박 주문을 걸고 있는 셈이다. 그 길대로 가지 않으면 큰일날 것 같은 속박 주문.


엘리트코스와 그 보상의 당위성에 대해 집착하는 사람일수록 잘 못 보는 게 있는데, 바로 수많은 예외들이다. 공부를 잘했지만 좋은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는 사람은 의외로 많다. 중요한 시험날의 예상치 못한 상황 때문이기도, 경제형편 때문이기도,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사실 많다. 좋은 대학에서도 좋은 직업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경우는 더 많다. 어느 것이 좋은 직업인지 판별하는 것까지 이야기하기엔 너무 길고, 대충 생각해도 그렇다. 예외라기에 너무 많아서 오히려 엘리트코스로 무난히 진행한 사람들이 더 예외 같을 정도다.


왜 이들이 보이지 않냐면, 좋은 대학 나온 좋은 직업의 사람들이 본인들이 다닌 좋은 대학 동창들이나, 좋은 직업 수준에서 즐길 거리를 같이 즐길 여력이 되는 친구들만 보고 있기 때문이다. 가정형편으로 일찍이 자퇴하고 생업에 나선 동창은 동창회에 나올 리가 없고, 졸업 후에 여러 군데 취업에 실패하다 겨우 자리 잡은 친구는 골프와 와인을 즐기며 주식 이야기를 하는 모임에 나갈 여력이 없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다. 장에 내가 대학 때 같이 다니던 고갈비집이나 가자고 하면 아직도 그런 데서 노냐며 비웃는 놈들도 있으니 이제는 형편이 안 맞는 사람과는 어울리고 싶지도 않고 알고 싶지도 않은 건지도 모르겠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니다. 사실은 훨씬 많다. 엘리트그룹 보다 엘리트그룹이 아닌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은 인류사에서 변한 적이 없다. 리고 그들은 똑똑한 아이들 중 몇몇의 운 좋은 사람들이다.



남들이 놀 때 성실하게 공부한 것에 대한 보상


그렇다면 좋은 직업과 학력에 대해 사회에서 보상받는 것은 당연한 것인가? 특별한 몇몇 직업에 대해서는 그렇다고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남들이 놀 때 성실히 공부를 한 것'에 대해서 사회가 보상하는 것이라는 발상은 공감할 수 없다. 성실함은 지속적인 것이어야지 한때의 성실로 인생 전체를 보장받을 수 없다. 그리고 공부한 보상은 이미 가지고 있지 않은가, 머릿속에 든 지식들과 몸에 붙은 성실한 습관으로. 그리고 이미 알고 있을 텐데. 노력으로 얻은 지위와 직업이 안정적인 수입에는 도움이 될지언정 부자라고 할 만한 재산은 그 외의 사정들이 더 많이 작용한다는 것을.


개인이 발전하려고 노력한 보상은 발전된 상태 그 자체이다. 어떤 분야든 열심히 공부해 보았다면 알 수 있다. 전에는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는 세상의 어떤 부분들을 보고 느끼고 삶이 풍부해져 있다는 것을. 그리고 똘똘한 개인들이 여러 가지 문제들을 개선하거나 발전시키는 사회적 기반이 간접적인 보상이다. 


그에 더하여 주어지는 보상이 있다면 감사할 일일 뿐 사회는 보상할 의무가 없다. 개인의 발전 자체가 사회에 기여하는 바가 서 보상이 주어진다 하더라도, 그 보상은 다른 사람들이 새롭게 노력할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어서는 안 되고, 영구적으로 지속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어릴 때 바짝 공부해서 평생을 편안하게 보장받고 살아야 합당한 세상이라면 어릴 때 모든 사람의 계급결정되사회가 돼야 한다는 말일까?


과거에 성실해서 복을 받아 잘 살고 과거에 불성실해서 비참하게 사는 개미와 베짱이식 권선징악을 바랄지도 모르겠다. 근데 권선징악은 나쁜 자들을 향해 외치자.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을 다 나쁜 사람 취급하지는 말자는 거다.



사회적 권위와 권력은 능력순인가


탁월한 지성이나 깊은 성찰, 특별한 기술적 능력으로 가지는 권위는 알아볼 만한 사람들의 인정에서 자연스럽게 나올 것이므로 거론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알아보는 사람이 없어서 억울한 분들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그건 우리가 멍청해서 그런 거니 이해하시고, 우리가 종종 문제 삼는 권위는 부여된 지위로부터 비롯된 경우가 많다. 그 지위는 권위만이 아니라 어느 정도 권력이 생기는 것들이다.


권력이 쥐어지는 자리들이 개인의 능력에 따라야 한다는 생각은 미신이 아닐까 싶다. 공부를 잘한 것과 능력이 놓은 것도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 부분이고, 능력을 성적으로 혹은 서열로 검증하는 것부터 한계가 있는 일이다.


게다가 큰 결정을 하는 자리일수록 더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큰 책임과 다양한 고민이 필요한 법이다.  똑똑하고 현명하여 성찰이 깊을수록 그 자리가 무거워 피하기 쉽고, 적당히 영리하면서 결단력 좋고 어느 정도의 뻔뻔함과 주관적 고집이 있는 사람이 그 자리를 맡곤 한다. 일정 수준의 능력만 된다면 성격과 성향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 책임을 잘 짊어질 수 있고 그 힘을 목적에 맞게 발휘할 사람이 지위와 권력을 갖는 게 낫지 않은가. 그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일 테고.


내가 아주 잘 아는 못난이는 누구든 능력 하나는 좋다고 입을 대곤 했다(내가 하는 말이 아니라 전반적인 평가였다). 헌데 소통이 엉망이라 다른 사람들과 같이 하는 일들은 서로 간에 스트레스가 엄청났고, 책임 있는 결정에 앞서서는 어쩔 줄을 몰라 주변 사람들까지 불안하게 만들고, 심지어 체력도 꽝이라 늘 위태위태했다. 능력이 좋다고 해서 중요한 자리에 어떻게 앉힐 수가 있을까. '스텝이 체질인 자'로 살다가 지금은 혼자 이런 글이나 쓰고 있는 못난이야, 힘내자.




글이 길어져 다음 글로 이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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