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만나본 대다수가 미루다 미루다 마지막에 가서야 빛의 속도와 한계를 넘는 집중력으로 해치우는 시험전날파 또는 마감직전파였다. 그리고 나는 그 희귀하다는 미리미리파다.
학창 시절 공부는 매일 해두는 편이었고 시험시간이면 일주일 전부터 준비하다가 시험 전날에는 푹 쉬어버리는 편이었다. 한 달짜리 일이 있으면 계획이 잡힌 그날부터 조사하고 진행 계획을 잡고 미리 만들어둘 수 있는 부분들부터 짬짬이 해두는 편이었다.
극소수의 우리 미리미리파들을 괴롭히는 건 중간 회의에서 "그 부분은 수정해서 이런 방향으로 가죠"하고 가볍게 수정되는 모든 것들인데, 회의에 참석하는 대부분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단계들이라 아주 쿨하게 통과되곤 한다. 그리고 미리미리파들은 미리 해둔 작업에 수정 작업이 더해지는 셈이고. 어디다 하소연할 수도 없다. 마감 직전파들에겐 '그러게 그냥 막판에 하지 그랬냐'정도의 가벼운 문제이기 때문이다.
수정 작업과 재작업과 갈아엎기를 감수하고도 미리미리파로 살아온 건 순전히 체력적 한계 때문이었다. 막판에 몰리면 한꺼번에 처리할 체력이 못 되는 몸뚱이로 살아온 탓이었다. 시험 직전에 벼락치기를 했다간 시험 치러 가는 길이 병원 가는 길이 되고, 마감 직전에 몰아서 일했다간 퇴근길에 엠뷸런스를 타야 하는 저질 체력 탓이었다. 막판에 가서 몰아칠 수 있는 사람들이야 말로 내 기준에서는 존경스러운 사람들이다.
마감직전파들은 우리 미리미리파에게 성실하다거나(미련하다거나) 준비를 잘해두니 사고 날 일은 없겠다고 하는데, 미리 준비한다고 해서 다 준비할 수 있는 건 아니라서 날 사고들은 난다. 아무리 준비해도 상황이 갑자기 변해서 준비해둔 방향과 전혀 달라지면 결국은 몰아치기를 해야 하기도 한다. 그러면 결과적으로 남들보다 두배 일하는 셈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