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끼니에 진지한 건 일할 때 생긴 습관이다. 절대적으로 여가시간이 부족한 만큼 기분이 좋아지게 만들만한 시간도 쥐어짜내야 했을 무렵 얻은 특성이라고나 할까. 아무리 바빠도 밥은 먹으니까, 밥 먹을 시간조차 없을 때도 빵조각이라도 물고 뭐든 먹긴 해야 되니까, 그 먹는 것으로 최대한의 즐거움을 느끼려고 애썼다.
그렇다고 대단한 미식가는 아니어서 맛집을 찾아 줄 서서 기다리거나 하지는 못하는 편이다. 가급적 가까운 범위 내에서 그날의 상태에 맞추어 되도록 맛있는 것을 찾는 정도이다. 몸이 찌뿌둥한 날은 시원한 국물요리를, 잡생각이 많을 땐 매운 요리를, 성취감을 만끽하고 싶을 때는 내 경우엔 구워 먹는 고기다.
미식가가 아니라도 '내 입맛'이라는 건 나름 있어서 꼭 먹고 싶은 것은 먹어주어야 되는데, 요즘은 대부분 식당이나 간편 요리로 다 사서 먹을 수 있다지만 대체가 안 되는 그런 음식들도 있어서 그럴 땐 요리를 한다.
최초의 요리는 대학생 때 말도 안 되게 좁은 자취방에서 한 고구마줄기볶음이었다. 들깻가루 없이 간장 살짝 마늘 조금에 들기름 두른 엄마표 맛이 너무 먹고 싶은데 당최 파는 곳이 없어서 직접 해버렸다. 생각보다 먹을만했던 걸 보면 미세하게 소질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 후로도 가끔씩 이것저것 해 먹었는데, 인터넷에서 레시피를 보며 따라서 해보다 보니 이제 조금 요령도 생겼다. 굽기, 찌기, 볶기, 끓이기, 볶다가 끓이기의 방식을 기준으로 빛깔이 투명하거나 하얀 음식은 소금을 기본으로, 불투명하고 어두운 빛깔은 간장이 쓰일 때가 많다. 조금 구수한 깊은 맛을 원하면 새우젓이나 멸치액젓 같은 걸 한 스푼 섞어주고, 다진 마늘은 대부분의 음식에 들어간다고 보면 된다. 비린 맛이 걱정되면 재료를 미리 소주에 재워두고, 빨간 요리라도 고추장이 아니라 고춧가루와 간장, 설탕이어야 하는 경우는 이제 거의 감으로 알 수 있다.
음식은 언제나 간을 맞추는 것이 제일 중요한데, 내가 해 먹는 요리의 간은 내 입에 맞춘다. 무료한 날은 맵고 짜게, 속 시끄러울 땐 담백하지만 구수하게, 울적할 땐 고소하고 달큰하게. 그건 자연물을 가공해서 요리로 재탄생시킨 인간 본원적 제작행위를 해낸 나에 대한 보상이다. 음식이 실패하면 내가 다 먹어치워야 해서인 것도 부정하지 않는다. 맛없는 음식을 꾸역꾸역 먹는 것보다 슬프고 우울한 일은 없으니까. 간이라도 입에 맞아야 한다.
분명히 인터넷을 보면서 요리하는데도 그렇게 간을 맞춰 가다 보면 대부분은 어릴 적 엄마가 해준 그 맛을 닮아있다. 어릴 때 우리 엄마 음식은 참 맛이 없다고 생각했는데(우리 어머니껜 비밀입니다!), 나이가 들고 나니 그 맛없는 엄마 음식이 제일 먹고 싶은가 보다. 아니, 그때 너무 어려서 몰랐을 뿐 이게 맛있는 걸지도.
그렇게 내 요리는 어머니의 사랑과 어린 시절 추억을 육수로 내고 지금의 내 감정이라는 조미료를 뿌려 완성된다. 한 숟갈만 먹어도 뱃속 깊은데서부터 뿌듯하게 따끈해져 온다.
누가 봐도 음식 못하게 생겼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도대체 얼굴의 어느 부분이 그렇게 보이는 지는 모르겠지만, 신랑은 결혼할 때 집밥 얻어먹는 걸 꿈도 꾸지 않았다고 했다. 요리는커녕 라면이나 제대로 끓이려나 싶었다나 뭐라나. 역시 반찬을 사 먹거나 시켜먹거나 하는 날이 절반은 되지만 밥을 하고 찌개나 국을 끓이고 반찬 몇 가지 올려 밥상을 차려내는 날도 절반은 되니 신랑은 몇 년째 감동하는 중이다. 미안하지만 내가 먹고 싶어서 차린 밥상에 숟가락만 올려 둔 것뿐인데. 매번 맛있게 잘 먹으니 또 보기는 좋다. 조만간에 누군가에게 밥 해 먹이는 즐거움도 알게 될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