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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기 Sep 14. 2021

바보 같지만 내 계산대로 산다

재난지원금은 이번에도 신청하지 않기로

"재난지원금 신청할까"

"하고 싶은 대로 해. 난 필요 없을 듯."

"나도 필요 없을 듯. 안 할게."


이번에도 재난지원금을 맞이한 우리 부부의 대화는 이것으로 끝이다. 우리는 따져볼 필요도 없이 재난지원금 대상이다. 하지만 이전부터 한 번도 지원금을 신청하지 않고 있다.


대단한 이유는 아니다. 지원금은 코로나로 인한 생활지원의 성격과 소비 증진의 목적을 겸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경제적으로 하위권이지만 코로나 때문은 아니고 코로나 이후로 수입이 줄지도 않았다. 코로나 때문에 마스크 비용이 더 들긴 하지만 마스크 덕에 내 비염이 잠잠해져서 약값과 휴지값을 많이 아끼고 있다. 지원금을 받아도 소비를 더 늘리지도 않을 것 같다. 그러지 받지 않기로 했다.


지원금을 받는다고 소비를 더 늘리지도 못할 나 같은 사람이 받으면 내 저축금은 25만 원 늘겠지만 지원금이 목표로 한 것에는 도움이 되지 않고 세금을 낭비하는 격이 되니 내 공동체에 손해다. 그리고 지원금은 소비의 영향이 확장될 것을 고려한 것이니 그 손해는 25만 원을 넘는 금액일 것이다.


내가 25만 원을 받지 않으면 남은 25만 원은 또 다른 용도를 가지고 쓰일 것이다. 더 절실한 어딘가에 지원될 수도 있고, 지원금 대상이 되지 못해 억울해 죽으려는 누군가를 달래기 위해 쓰일지도 모르겠다. 눈먼 돈이 되어 용도 자체가 바뀌어버릴있겠지. 상관없다. 어떤 용도로 쓰이든 공동체의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거나 누군가의 공격성이 줄어들 테니까.


바보같이 왜 그러냐고도 하던데, 남들이 다 받는 돈을 나만 받지 않으면 손해라는 셈법은 내 셈법이 아니다. 내 셈법은 공동체의 주머니 계산법에 따른다. 공동체에서 걷은 주머니속 돈은 공동체에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주머니 밖으로 꺼내 쓰여지고, 이것은 나의 일상적인 삶을 성립하게 한다.


세금과 공적 보험금을 낼 때의 셈법은 내가 낸 만큼 돌려받고 이자를 챙기는 금융거래의 셈법과도 다르다. 내는 것과 돌려받는 것의 형태부터 다르니 크기를 비교할 수 없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세세하게 따져보면야 적절하지 않거나 불평등한 부분들도 있고 그런 부분들을 치열하게 논의해야 되긴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내 세금이 내가 사는 환경을 깨끗하고 안전하고 평화롭게 보낼 수 있는 데 쓰이고 있거나 쓰이도록 애쓰고 있다고 믿고 있다. 


비관에 빠져 내 차 앞으로 달려들지 모를 어떤 사람, 거리에서 마구잡이로 휘둘러질지 모르는 폭력, 약속을 간단히 어겨버려 입게 되는 피해들, 가난을 참다 참다 일어날 수 있는 빈민의 폭동까지. 이 모든 것들로부터 벗어나거나 피해의 가능성을 줄여주거나 보상받을 법적 장치들을 가지고 평온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으로 일상에서 돌려받고 있기 때문이다. 포장된 도로를 다니고 깨끗한 물로 씻을 수 있는 것만 해도 이미 혜택을 받고 있는 셈이다.


세금 낸 만큼 직접적인 혜택을 받고 싶다는 욕망의 셈법과 내 옆 사람도 받는 데 내가 못 받으면 손해라는 경쟁의 셈법이 나에게 어색한 이유다.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재난지원금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비난하거나 나쁘게 볼 필요도 없다. 잘 받아서 나보다 잘 써주면(어지간하면 나보다는 잘 써줄 것이다) 나의 공동체에 이득이니까. 많이들 받아서 전반적으로 기분 좋은 사람들이 많아지면 거리는 더 안전해지기도 하고.


그러니까 우리 부부는 바보가 아니라 계산기가 다를 뿐인데, 남다른 계산기를 굳이 고집부려 쓰는 걸 보면 바보가 맞기도 하다. 그래도 부부가 함께 바보라 우리 셈법대로 살면 싸울 일 없이 즐거워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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