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 만 글들이 쌓여간다
이게 다 콧물 때문이다
쓰다만 글 목록이 벌써 꽤 쌓였다. 적당히 마무리하고 눈에 띄는 문제만 없으면 별생각 없이 발행해왔는데, 요즘은 도통 그게 잘 안된다. 그동안 쉽게 쓰고 쉽게 발행해온 업보를 받는 중일까.
대단한 글을 쓰고 싶어서 그런 것도 아니다. 아름다운 문장이나 냉철한 시선을 담은 글, 재미난 이야기의 글들을 읽으면 조금 부럽기도 하지만 욕심내지는 않는다. 그저 솔직하게 지금의 내 머릿속 이야기를 그리기만 하려는 것뿐인데, 그렇게 나 자신이 즐겁고 편안해지는 것이 목표일 뿐인데, 지금은 쓰다가 만 글들을 보며 되려 답답해지고 있다.
그래서 이번엔 글이 마무리되지 않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봤다.
글을 쓰기 시작할 때는 분명히 할 이야기가 있었는데 글을 쓰다 보니 할 이야기가 사라지는 기분이다. 꼭 쓰고 싶은 말이었는데 갑자기 글로 쓸 필요 없는 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보여주고 싶은 이야기였는데 쓰고 보니 하려던 이야기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글을 쓰는 도중에 스스로 생각이 바뀌어있음을 깨닫기도 한다.
글을 쓰는 중에도 끊임없이 생각이 흔들리고 있다는 뜻이다.
보통 생각하던 말을 한 번에 쭉 써 내려간 후에 아주 어색한 부분만 걸러낸 후 거의 날 것인 상태로 발행해버리기 때문에 글을 쉽게 쓰는 편이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며칠 혹은 몇 주 동안 생각하던 것이 머릿속에 정리되었을 때 글쓰기를 시작하는 것이니 머릿속의 글쓰기는 내가 인지한 것보다는 오래 걸리는 듯하다. 그런데 글을 쓰는 중에 생각이 흔들리다니,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 것이다.
그러고 보니 요즘따라 어떤 생각이 들어도 그 생각을 집요하게 이어가거나 깊이 파고들기가 어렵다.
머리가 좀 멍한 느낌이긴 하다. 그건 요즘 다시 돌아온 비염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 비강에 콧물이 계속해서 차오르는 기분이다. 수시로 콧속이 찡하게 아파오고 간지럽기도 하고 이미 헐어버린 코와 인중과 윗입술에도 틈틈이 바셀린을 발라줘야 한다. 방심했다 하면 콧물이 흘러내려 빡구가 되어버리니 뭔가 하다가도 후다닥 휴지를 찾아 재빠르게 뜯어 코를 푼다.
<글을 마무리하기 힘들다 - 생각이 정리되지 않는다 - 생각을 깊고 오래 하기 어렵다 - 머리가 멍하다 - 콧물 때문이다>라는 흐름이라면, 글을 마무리하지 못하는 건 다 콧물 때문인 셈인가?
글을 쓰는 동안에도 벌써 세 번째 콧물이 흘렀다. '머리가 좀 멍한~' 부분을 쓰면서 "이것만 쓰고 나서!" 하다 콧물이 흘러 허벅지에 떨어져 찝찝하다. 그것보다 더 찝찝한 건 쓰다만 글 이야기를 왜 시작했는지 잊었다. 그래서 이 글의 목적을 지금 정하기로 했다. 이렇게 - 마무리에 대한 부담을 줄이고 가볍게 글을 마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