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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기 Jan 10. 2022

겁쟁이라 그래요

표현의 자유가 넘치는 시대

몰래 쓰던 글이 있다. 법의 기본원칙과 법감정에 대한 생각들을 담은 글과 민주적 가치들을 체화한 세대들을 만난 이후의 가치에 대한 몇 가지 담론이었는데, 아마도 결국 발행하지는 못하지 않을까 싶다. 왜냐하면 나는 겁이 무척 많으니까.


표현의 자유가 소극적인 내면의 표출을 넘어 문자의 형태를 갖추고 글이 되어 공적인 공간에 전시된 순간부터는 언제나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 책임이 정부의 탄압이거나 논객들의 비평이었던 과거에는 책임질 각오로 글을 쓰는 것이 겁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 책임이 알 수 없는 수많은 네티즌의 집단적 비난과 신상 털기, 지난 성과에 대한 평가절하에까지 이어지고 있어서 나는 진정으로 겁이 난다. 나는 그런 것 까지 감수할 용기는 없는 겁쟁이다.


'욕먹을만하니 욕먹어도 싸다'라고 하지만, 인터넷 시대에서의 비난은 한 번 시작되면 이후에는 비난에 더한 욕설을 얹고, 다들 욕하고 있으니 굳이 한마디 보태야만 정의를 지키는 시민이 되는지 똑같은 비난으로 동참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자가 증식한다. 자가 증식하던 비난은 발언이 철회되거나 사과하는 것만으로 끝나기는 어렵다. 발언자가 완전한 패배를 선언하여 비난자들의 축제로 끝나거나 아니면 시간이 흐르면서 다른 비난할 것들에 비해 흥미가 떨어졌을 때 끝이 난다.


한편으로는 휘발적인 감정과 비난의 표현에 대해서 이토록 극도의 자유를 모두가 아낌없이 즐기는 와중에, 누군가에게는 진지하고 심각한 문제제기로 여겨지는 어떤 문제들은 다수의 입맛에 맞지 않거나 불쾌하다는 이유로 재갈을 물리고 싶은 것은 아닌지 걱정되기도 한다. 과거에 비해 국가기관에 의한 통제는 약해졌지만, 집단적 린치에 의한 사적 영역에서의 압박과 통제는 어쩌면 더 강화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먼 과거와의 비교이며, 단순한 이번 정부에 대한 평가가 아니니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국가권력에 의한 억압이 아니라면 상관없는 것일까. 정치화된 집단들의 돌팔매질은 권력이 아닌 걸까. 표현의 자유는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하더라도 제약 없이 다수가 늘 이기는, 소수는 내면적인 양심의 자유에만 머물러야 합당한 그런 자유인 걸까. 아니면 양심조차 다수의 뜻에 맞게 갖추도록 강요하는 전체주의 사회로 가는 중인 걸까.


이 글은 자신의 생각을 들키는 것이 부끄럽고 다른 사람들의 비난이 무서운 겁쟁이의 단순한 투정일 뿐일지도 모른다. 그랬으면 좋겠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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