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기 Jan 03. 2022

책을 고르는 시간

나를 새롭게 해 줄 그 책을 찾으며

새해라서 새로 읽을 책을 고르고 있다. 새해랍시고 새 물건을 집안에 들이고 싶은 사소한 욕구도 있겠지만, 다른 이유도 있다. 언젠가부터 어떤 글을 봐도 어떤 주장을 들어도 '그래 봐야 어차피...'라는 식으로 뻔한 이야기 취급을 하려 드는 나를 발견해서다. 그래, 나도 어느 새 꼰대가 되어가고 있다.


뻔하게 느껴지는 게 너무 많아지는 건 내가 아는 게 많아져서도 아니고, 나의 사고체계가 완벽해서는 더더욱 아니다. 그건 착각이다. 사실은 구체적으로 깊이 생각하기를 귀찮아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며, 다른 생각들을 내 생각의 틀 안으로 구겨 넣는 것에 지나치게 익숙해졌다는 뜻이다.


대학에서 아무리 최신의 이론을 접했더라도 10년 후에 그 이론은 이미 새롭지 않은 이야기가 되었고, 20년 후에는 누구나 아는 상식이 되었거나 반박받고 폐기될 것이다. 여전히 살아있는 논쟁거리라면, 그 논쟁은 처음 알고 있던 그 논쟁과는 다른 논쟁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 시간 동안 계속 공부하며 생각을 열어두지 않고 처음 배운 그 틀 안에서 사고하고 판단한다면 꼰대가 되는 건 한순간이다. 그리고 세상은 늘 완전한 멍청이가 아니라 어설프게 똑똑한, 스스로 똑똑하다고 착각하는 멍청이들이 망쳐왔다.


그래서 새 책을 고르는 일은 신중해야 한다. 똑똑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아직도 멍청이라는 걸 깨닫기 위한 책을 골라야 한다.


새로운 깨달음과 영감을 줄 것만 같은 기대감이 있으면서도 내가 읽어내기에 무리되지 않을 만큼은 친숙한 면이 있어야 한다. 기분 내키는 대로 주워 담다 보면 장바구니 안에는 이전에 읽은 책과 같은 내용의 변주들만 가득해지기 쉽고, 처음 보는 내용이라고 무턱대고 도전만 외치다 보면 10장을 넘지 못하고 못 읽겠다 포기하는 책만 쌓이고 만다.


서점에서 서가에 분류된 책들을 찬찬히 살펴보고 관심 가는 책은 잠시 꺼내 목차와 서론을 읽어보면서 읽을 책을 고르는 걸 쇼핑 중에 최고로 친다. 하지만 정초부터 허리가 고장 난 관계로 서점을 가지 못하고 감질나게 인터넷 서점을 들락거렸다. 누워서도 볼 수 있으려면 전자책이 낫기도 하니 그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열심히 신중을 기해 골랐다 싶다가도 문득 장바구니를 열어보면 전쟁터다. 읽고 싶은 그리고 읽어봐야 할 것만 같은 책들의 유혹과, '결국 이 결론 아니야?'하고 뻔하게 여기려는 내 안의 관성이 장바구니에서 충돌하여 다투고 있다. 세상 제일 어려운 전투, 장바구니 개혁이 필요한 시점이다.



새해에 만날 새 책들이 나의 세상을 또 한 번 새롭게 일깨워주길. 그리고 이 글을 읽은 모두 새해 복 넘치는 한 해가 되시길.

작가의 이전글 2021년이 지나간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