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가가 늦어지는 날이 잦아지는 신랑을 보면서 올해도 연말이 찾아왔음을 실감한다. 회계연도를 따지지 않는 업무라도 연말은 마무리지어줄 일들로 대개 바쁜 법이다. 그래도 12월이면 늘 의무감이 들곤 하던 송년회들이 코로나 덕분에(?) 크게 줄어서 술에 찌들지는 않아도 되니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코로나가 아니더라도 나는 이제 나가야 할 송년회가 없다. 공황장애를 겪은 이후로 일을 그만두고 사람들과 만남을 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많은 인간관계가 원래부터 없었던 양 정리되었다. 외롭다고 느끼는 것도 잠시이고 적응하는 동물은 조용히 혼자 보내는 연말에 익숙해졌다.
그래도 문득 한 해를 정리하는 감각을 되살리고 싶어 혼자만의 송년회로 청소를 해봤다. 묵은 먼지를 쓸어내고 걸레로 가볍게 닦아주며 내 보금자리를 단장하는 의식이다. 청소용 슬리퍼까지 깨끗이 빨아 널어두고 앉았더니 허리가 뻐근하다. 한 해 동안 밖에 나가지 못하는 날이면 집안에서 걷기 운동을 하는 내 발 밑에서 층간소음을 줄여주느라, 동시에 바닥을 닦아주느라 고생한 슬리퍼다. 납작해진 털을 열심히 솔로 문질러 다시 풍성하게 만들어두었으니, 너는 내년에도 조금 더 고생해야겠다.
올 한 해는 이렇게 아주 고요하게 흘렀다. 큰 사고 없이, 큰 병 없이, 큰 상처 없이, 큰 소리 낼 것도 없이, 시끌벅적한 만남 하나 없이 이렇게 흘러왔으니 참으로 고요하고 다행이었다.
글쓰기를 시작한 것도 올해다. 고요함 속에 혼자만의 생각으로 머물렀던 것들이 글자로 풀어져 나오기 위해 구르고 굴러 그 자리를 깊게 하고 흐름을 만들기 시작했다. 언젠가는 작은 웅덩이에서 개울로, 강으로 크게 흐를 수도 있을까. 그 언젠가에 웅덩이가 채 흐르지 못하고 말라 붙는 날이 오더라도, 2021년의 이곳은 작게 일렁이며 조금은 반짝거렸다고 기억하고 싶다.
깊고 고요했던 2021년, 외로움 끝에 글쓰기를 만나 다정해진 한 해를 정리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