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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기 Feb 09. 2022

잠을 못 자서 쓰는 글

혐오의 시대 - 유머 상실의 시대

불면의 밤이 일주일을 넘어가고 있다. 처음 몇 날은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지냈는데 깊은 잠을 못 잔 지 오래되니 온 몸 구석구석이 이상한 방식으로 아파와서 점점 더 예민해지고 있다. 몸이 그러니 잠들기는 더 어려워졌다.


잠들기를 아예 포기하고 글을 읽어대 더 이상 눈 뜨고 있기 힘들 지경으로 만들어 눈이라도 좀 감고 있기 수월해지게 하고 싶었다. 읽으려니 머릿속이 불투명하고 집중도 되지 않아 책도 읽지 못하고 인터넷을 돌아다니며 짤막한 글들이나 주워 읽으며 지내고 있다.


잠을 못 자 예민할 때일수록 편안하고 기분 좋은 글이 더 필요한데, 책이 아니라 인터넷을 떠돌다 보니 요즘은 그런 글을 찾기가 힘들었다. 브런치에서 돌아다녔으면 간단한 일이었겠지만, 글쓰기를 시작한 이상 빨리 글을 써야 한다는 약간의 압박감을 느끼게 되는 이곳은 예민할 때 찾을 수 없는 곳이 되어버렸다. 안타깝기 그지없다.


인터넷 속에서 사람들은 갖가지 혐오를 쏟아내고 있었다. 어떤 곳에서는 성별이 문제였고 또 어떤 곳은 국적이 문제였으며 정치색이 문제였고, 부유한 것이, 그 바로 옆에서는 가난한 것이 문제였고 민트 초코를 좋아하는지가 문제였다. 서로가 얼마나 더 혐오할 수 있고 어떻게 더 혐오할 것을 찾아낼지 경쟁이라도 붙은 것 같았다.


왜 이렇게 즐겁기만 한 글을 찾기 어려워졌을까 생각하다 보니, 혐오의 글들이 넘쳐나는 것이 유머의 글이 줄어드는 것과 무관하지는 않다는 기분이 들었다.


어떤 농담이 혹 누군가를 비하하는 게 되지는 않는지, 어떤 집단을 불편하게 하지는 않을지를 한 번쯤 돌아보는 것은 좋은 자세이다. 하지만 비하로 읽힐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표현들이 모두 금지되고 있다면, 어떤 무리들에게 거슬리는 어떤 견해들은 즉시 비난받고 매장되어버린다면, 표현은 경직될 수밖에 없다.


경직된 표현들은 내면에서 스트레스로 쌓여 언젠가 터져 나온다.


불편하거나 싫은 어떤 것 혹은 어떤 사람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런 것들을 예전에는 살짝 비꼬거나 웃기는 상황으로 넘길 수 있었다면, 지금은 그 웃음 안에 숨긴 불편함과 싫은 감정을 굳이 꺼내서 양심의 재판을 받으라고 요구받고 있다.


애초에 불편하고 싫어하는 감정이 사회적으로 올바르지 않아서 교정하고 싶은 욕구가 들 수도 있다. 인간의 감정조차도 사회와 문화와 속한 조직의 영향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으니 더더욱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감정 그 자체는 자동반사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몇 마디 말과 몇 번의 교육으로 순간적인 감정들까지 제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억압된 감정들은 왜곡된 방식으로 분출되고 표현된다.


서로 혐오해대면서 서로에게 혐오하지 말라고 하는 요즘의 상황이 꼭 모두가 괴로워서 아우성치는 것만 같다. 하지만 혐오하지 말라는 말은 혐오할 대상을 더 명확하게 드러내 줄 뿐이다.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유머만이 부정적인 감정을 승화시킬 수  있다. 부정적인 감정 자체가 나쁜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유머로 풀어내는 것에는 조금 관대했으면 좋겠다. 그렇게라도 감정 한 끝을 풀어낼 구석이 있어야 다른 방향에서 바라볼 여유도 찾을 수 있다. 어떻게든 한치도 놀림받지 않으려고 온 몸에 뻣뻣하게 힘 주며 애쓰는 것보다 서로 놀리면서 낄낄거리는 편이 낫다.


잠들기를 완전히 포기하고 글을 쓰다 보니 벌써 동틀 시간이 다되어간다. 이제는 약이라도 먹게 병원을 가봐야 하나 생각하는데 졸음이 몰려오는 듯하다. 오라고 할 땐 안 오더니 이제 됐다니까 오다니 잠이 꼭 말안듣는 네 살 꼬마 같다. 오늘은 아무래도 유칼립투스에 취한 코알라라고 놀림받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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