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 중에 눈이 내려 하얗게 쌓이고 있다. 눈이 하얗게 보이는 건 빛을 반사해서라고 했다. 아무런 빛도 없는 깜깜한 곳에서라면 눈도 검은 어둠으로 보일 뿐이다. 하지만 달빛이라도 있다면 눈은 하얀 모습을 드러낸다. 가로등이 불을 밝히고 집집마다 불빛이 새어 나오는 사람 사는 곳의 눈은 은은하게 빛나기까지 한다.
스스로는 아무런 빛을 내지 못하지만 다른 것들의 빛을 받아 품어 밝아진 눈 덕분에 눈 덮인 밤길이 밝다.
사람도 눈처럼 깨끗한 마음이라면 하얗게 밝힐 수 있을까.
모든 사람이 강렬한 빛을 가지고 밝게 빛나지는 못한다. 내 빛은 이미 다 타버려 꺼져버렸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 사람이라도, 스스로는 너무 초라하고 마음속에 자리잡은 어둠이 커서 빛을 낼 수 없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내는 빛을 품고 반사함으로 빛날 수도 있을 것 같다.
스스로 빛나는 것보다 약하고 희미하더라도 괜찮다. 눈부시게 밝은 빛도 찬란하지만 은은한 빛도 아름답다. 뜨겁지 않아도 다정할 만큼은 따뜻할 수 있다. 그렇게 은은하고 싶다.
내가 아닌 이들의 빛을 알아보고 잘 품고 싶어 눈을 맑게 씻어낸다. 마음이 깨끗하면 한껏 빛을 담을 수 있을까 싶어 비워내고 비워낸다. 그러고도 남은 마음의 흠집들을 덮어줄 눈을 맞으러 나섰다. 얼굴에 내려앉는 차가운 눈송이가 신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