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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기 Jan 28. 2022

이웃집 개가 울고 있다

상상력이 오지랖을 부린다

- 레기씨, 생각보다 용감하구나!


강남역 인도 위에 느닷없이 추락한 참새를 보자마자 손으로 잡아들고 화단의 덤불 사이에 내려놓는 것을 보고 같이 있던 분이 그랬다. 용감하다고.


사실은 너무 겁이 나서 그랬다. 전철역 입구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고, 순간 내 머릿속에서는 발에 밟혀 납작해지는 참새가 그려졌고, 그 끔찍한 장면이 내 눈앞에 실현되는 게 너무 무서워서 나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그러고도 동물병원에 데려가거나 할 생각까지는 하지도 못하고 어쩌지 어쩌지 하고 말았으니 딱히 용감하지도 선하지도 않은 사마리아인이다.


늘 그런 식이다. 도로에 치인 강아지를 보고 뛰어들었을 때에도, 안아 들고 길가로 옮겨놓고 일단 내 눈앞의 끔찍함이 조금 안정되고 나면 어쩔 줄 몰라하다 도망치고 말았다. 차에 치인 것은 네 운명이었다, 이제 살고 죽는 것도 네 운명일 것이다, 하지만 내가 동물병원에 데려간다면 그때부터는 네 인생에 내가 들어가는 일이고, 나는 그게 무섭다, 그러니 여기까지.


부디 무사했으면 하는 찜찜함을 감내해가면서 결국 돌아서는 선택을 하는 나는 늘 비겁한 사람이다.


그리고 며칠째 이웃집 강아지가 울고 있다.


짖는 것이 아니라 '끼우우웅~', '이잉~아웅 아웅'하고 울고 있다. 이 소리가 생소한 것은 아니다. 종종 들어왔던 소리이니까. 낯선 것은 시간이다. 이 강아지는 주로 낮에, 점심때쯤 혹은 오후 네시쯤 혹은 일몰 후의 시간에 조금 울다 말곤 했다. 그런데 요놈이 하루 종일 울고 있는 게 이틀인가 사흘인가 된다. 간밤에는 새벽 내내 울었다.


소리가 시끄러운 건 문제가 아니다. 그 소리가 너무 구슬퍼서 마음이 시끄러워 문제다. 흔한 분리불안 같은 게 아닐까 하다가도, 어디가 아픈 건 아닐까 걱정이 된다. 주인은 집을 비운 걸까? 혹시 먹을 것도 없이 갇혀서 곤란한 상황일까? 낡은 임대아파트라 혼자 사는 노인들이 많은데, 혹시 주인이 쓰러지거나 한 건 아닐까? 누가 좀 도와달라고 저렇게 슬피 울고 있는 걸까?


감지 않은 머리를 모자로 가리고 대문 밖에 나섰다가 곧 도로 들어왔다. 내가 뭐라고 나선단 말인가. 주인이 어디 여행이라도 간 거겠지. 원래도 분리불안이 있는 것 같았으니 주인이 눈에 안 보인다고 우는 게 분명하다. 확률적으로 가장 높은 시나리오다.


헌데, 분리불안이 심한 개를 혼자 두고 주인이 집을 오래 비운다니, 이것도 이상한 것 아닌가? 내가 가끔 변비 끝에 변기 위에서 숨 막히다 기절하는 것처럼 어디 쓰러져있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지? 가서 문이라도 두드리고 확인해봐야 하나? 그런데 쓰러져 있으면 문도 못 열 텐데, 관리사무소에 이야기해야 하나? 정말로 이웃집에 문제가 생긴 거라면 또 뭘 어쩔 것인가.


강아지 소리가 잦아들면서 나는 또 한 번 비겁의 방패를 두르고 안정을 찾는다. 단순히 주인을 집을 비운 게 분명하며, 강아지는 분리불안이 심할 뿐이다. 다시 또 울기 시작하면, 나는 그저 관리사무소에 전화를 걸어 층간소음에 대한 문제제기만 해야겠다. 괜히 혼자 상상한 것 만으로 오지랖을 부리려 했다니, 부끄럽기 짝이 없군.


강아지가 다시 울기 시작했다. 전화를 하려다 문득, 관리사무소에서 한번 찾아가 보지도 않고 하던 대로 층간소음에 대한 경고방송이나 한 번 하고 말면 어쩌나 걱정이 든다. 그러면 안 되는데, 말을 어떻게 해야 하나 가다듬어봐야 한다.


강아지의 울음은 구슬프고, 내 머릿속은 시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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