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적 휴식과 감정의 소중함
아빠가 40대 때 번아웃으로 쓰러진 적이 있어.
응급실에서 의사가 묻더라. "스트레스 많으시죠?"
난 "아니요, 괜찮아요"라고 대답했어.
의사가 웃으면서 "괜찮은 사람은 응급실에 안 와요"라고 하더라.
그때 처음 알았어. 내가 전혀 괜찮지 않았다는 걸.
우리 세대는 '자기 돌봄'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어.
아플 때만 쉬는 거였지. 아니, 아파도 참고 일했어.
"정신력으로 극복한다"가 미덕이었거든. 지금 생각하면 미친 짓이었어.
정신력으로 극복하다가 정신과 약 먹는 친구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니?
너희는 '번아웃', '멘탈 관리', '워라밸' 이런 단어를 자연스럽게 쓰잖아.
처음엔 "요즘 애들은 나약해"라고 생각했어.
근데 너희가 맞아. 우리가 비정상이었어.
자기 몸과 마음을 돌보는 게 나약한 게 아니라 현명한 거더라.
자동차도 정기점검 하잖아. 5,000km마다 엔진오일 갈고, 타이어 공기압 체크하고.
그런데 우리는? 자동차보다 못한 대접을 받고 있어.
자동차는 10년 타면 바꾸지만, 우리 몸은 평생 써야 하는데 말이야.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감정 노동'이라는 게 있어.
겉으로 웃으면서 속으로는 울고 있는 거.
아빠도 오랜 시간 사회생활 하면서 매일 했어.
윗사람한테 욕먹고도 "네, 알겠습니다" 하고,
누군가에게 무시당해도 "괜찮습니다" 하고.
그게 쌓이고 쌓여서 어느 날 폭발하더라.
MIT 연구에 따르면, 현대인은 하루에 평균 70개의 결정을 내린대.
뭐 먹을지, 뭐 입을지, 어떻게 대답할지...
이런 작은 결정들이 뇌를 지치게 만든다고.
그래서 스티브 잡스나 마크 저커버그가 매일 같은 옷을 입었대.
'결정 피로(Decision Fatigue)'를 줄이려고.
근데 우리가 가장 무시하는 피로가 뭔지 아니?
'감정 피로'야. 화났는데 참고, 슬픈데 웃고, 지쳤는데 괜찮은 척하고.
이게 육체노동보다 더 지친다는 연구 결과가 있어.
네덜란드에 '니크센(Niksen)'이라는 문화가 있대.
'아무것도 하지 않기'라는 뜻이야. 그냥 멍 때리는 거지.
근데 이게 과학적으로 증명된 휴식법 이래.
뇌가 '기본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라는 상태가 되면서 진짜 휴식을 취한다고.
우리는 쉬면서도 뭔가 해야 한다고 생각해.
넷플릭스 보고, SNS 하고, 게임하고.
그런데 그건 쉬는 게 아니라 '다른 자극'을 받는 거야.
진짜 휴식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래.
아빠도 최근에 시작했어. 하루 10분 그냥 멍 때리기(아빠가 바보 같아 보일 때가 바로 그 때야).
처음엔 불안했는데 지금은 하루의 보상 같아.
감정의 소중함에 대해서도 얘기해야겠네.
우리 세대는 감정을 숨기는 게 어른스러운 거라고 배웠어.
"남자가 왜 울어"
"감정적이면 안 돼" 이런 말 들으면서.
그래서 아빠도 40년 동안 감정을 꾹꾹 눌러 담았어.
그 결과? 어느 날 아무 이유 없이 눈물이 나더라.
병원 가니까 "감정 억압으로 인한 우울증"이래.
하버드 의대 연구가 충격적이야.
감정을 억압하는 사람이 표현하는 사람보다 심장병 위험이 70% 높대.
감정이 몸에 쌓여서 병이 된다는 거야.
우리말에 "화병"이 있잖아. 진짜 있는 병이더라.
픽사 영화 '인사이드 아웃' 우리 같이 봤잖아. 네가 정말 좋아하는 영화지.
슬픔이도 필요하다는 메시지 있잖아.
처음엔 "왜 슬픔이 필요해?" 했는데, 심리학적으로 맞는 말 이래.
슬픔은 우리가 쉬어야 한다는 신호고, 도움이 필요하다는 신호래.
그런데 우리는 이런 신호를 무시해.
피곤한데 커피 마시고, 슬픈데 "괜찮아"라고 하고, 화났는데 웃으면서 넘어가고.
이게 계속되면? 몸이 더 큰 신호를 보내. 그게 번아웃이고, 공황장애고, 우울증이야.
요즘 이런 말이 있다고 하더라고. 'JOMO(Joy Of Missing Out)'라는 말.
놓치는 기쁨? 처음엔 이해 안 됐는데, 지금은 알겠어.
모든 걸 다 하려다 정작 자신을 놓치는 것보다, 뭔가를 놓치더라도 자신을 챙기는 게 낫더라.
또 한창 유행했던 '미라클 모닝' 있잖아.
그래서 책 보고 새벽에 일어나고 한동안 난리였지.
근데 아빠는 '미라클 이브닝'을 더 추천해.
아침에 뭔가 하려고 새벽에 일어나는 것보다,
저녁에 일찍 모든 걸 끄고 쉬는 게 더 기적 같아.
덴마크가 행복지수 1위인 이유를 아니? '휘게(Hygge)' 문화 때문이래.
아늑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즐기는 거야.
촛불 켜고, 따뜻한 차 마시고, 그냥 있는 거.
생산적이지 않아도 괜찮다는 문화. 우리한테 가장 필요한 게 이거 아닐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자기 돌봄은 이기적인 게 아니야.
네가 건강해야 주변 사람들도 행복해.
아빠가 번아웃으로 쓰러졌을 때, 가장 힘들어한 사람이 누구였는지 아니? 너희들이었어.
그러니까 제발, 네 몸과 마음의 신호를 무시하지 마.
피곤하면 쉬고, 슬프면 울고, 화나면 표현해.
그게 나약한 게 아니라 건강한 거야.
아, 그리고 하나 더. "괜찮아?"라고 물었을 때 "괜찮아"라고 자동으로 대답하지 마.
진짜 괜찮은지 3초만 생각해 봐.
괜찮지 않으면 "사실 좀 힘들어"라고 말해도 돼. 그게 시작이야.
아빠도 50년 만에 배우고 있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시작해서 다행이야.
너는 좀 더 일찍 시작했으면 좋겠어.
자기를 돌보는 것도 실력이고, 연습이 필요한 기술이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