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나를 위한 시간

고독과 친해지기

by 강훈

아빠는 비슷한 또래의 사람들보다 혼자 밥 먹는 것을 잘했어. 그것을 보고 주변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하더라. 1인 가구 시대가 많아지면서 혼자 밥 먹는 풍경이 자연스러워졌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드문 풍경이었지. 아빠는 뷔페식당도 혼자 가서 먹어 본 적도 있어. 그 얘기를 하면 주변 사람들이 깜짝 놀라.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면서. 혼자서 뭔가 한다는 것은 기본적인 외로움 이상인가 봐. 마치 이 사회에서 뭔가 적응하지 못하는 이미지라고 할까. 암튼 예전엔 그런 분위기가 제법 강했어.


요즘 너희는 ‘혼밥’, ‘혼영’, ‘혼술’ 이런 말을 자연스럽게 쓰잖아. 처음엔 “외로운 애들이구나” 생각했어. 근데 아니더라. 오히려 자기 자신과 친한 사람들이 혼자를 즐기더라.


MIT 셰리 터클 교수가 충격적인 연구 결과를 발표했어. 현대인들이 혼자 있는 것을 고문처럼 느낀대. 실험에서 사람들한테 15분간 아무것도 하지 말고 혼자 있으라고 했더니, 67%가 차라리 전기충격을 받겠다고 했어. 자기 생각과 함께 15분을 못 견디는 거야.


우리는 언제부턴가 ‘혼자 = 외로움 = 루저’라는 공식을 만들었어. SNS가 더 심하게 만들었지. 다들 왁자지껄한 사진만 올리니까, 혼자 있으면 뭔가 뒤처진 것 같고.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가장 창의적이고 성공한 사람들은 혼자만의 시간을 철저히 지킨대.


빌 게이츠의 ‘생각 주간(Think Week)’ 들어봤어? 1년에 두 번, 일주일씩 완전 혼자 있는대. 가족도 안 만나고 숲 속 오두막에서 책만 읽고 생각만 해. 여기서 마이크로소프트의 주요 전략들이 나왔다고.


작가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에게 필요한 건 자기만의 방”이라고 했잖아. 근데 이게 여성만의 이야기일까? 모든 사람에게 ‘자기만의 시간’이 필요해.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심리적 공간.


아빠가 공황장애 치료받을 때, 상담사가 물었어. “하루 중 온전히 당신만을 위한 시간이 몇 분이나 되나요?” 대답을 못했어. 출근 준비, 회사, 집안일, 가족 시간… 24시간 중에 ‘나’를 위한 시간은 거의 없었어.


핀란드에 ’ 칼사리쾨니(Kalsarikännit)’라는 말이 있대. ‘집에서 속옷 차림으로 혼자 술 마시기’라는 뜻이야. 우리 같으면 “찐따냐?” 할 텐데, 핀란드에선 자기 돌봄의 한 방법이래. 문화 차이가 이렇게 커.


심리학에서 말하는 ’ 고독(Solitude)’과 ’ 외로움(Loneliness)’은 완전히 달라. 외로움은 원치 않는 혼자됨이고, 고독은 선택한 혼자됨이야. 100명과 있어도 외로울 수 있고, 혼자 있어도 충만할 수 있어.


칼 융은 매일 아침 호수 산책을 혼자 했대. 아인슈타인은 혼자 바이올린 켜는 시간을 절대 양보 안 했고. 무라카미 하루키는 새벽 4시에 일어나 혼자 글 쓰고 10km 뛰기를. 이들의 공통점? 혼자 시간을 ‘사치’가 아니라 ‘필수’로 여겼다는 거야.


‘디지털 디톡스’라는 말 있잖아. 근데 진짜 필요한 건 ‘소셜 디톡스’인 것 같아. 사람들로부터 떨어져 있는 시간. 아무에게도 반응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그게 진짜 휴식이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대학 연구가 재미있어. 하루 15분씩 혼자 산책한 그룹이 그렇지 않은 그룹보다 창의력이 60% 높았대. 멍 때리면서 걷는 그 시간에 뇌가 정리정돈을 한다는 거야.


일본의 ‘오히토리사마(お一人様)’ 문화라고 있어. ‘1인 고객’을 소중히 여기는 문화야. 혼자 밥 먹고, 혼자 노래방 가고, 혼자 여행하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아. 오히려 자립적이고 성숙한 사람으로 봐. 그런 비슷한 문화로 “미분당”이란 식당이 있어. 거기 음식 맛있다고 지인과 함께 갔는데, 그 지인과 대화를 주고받다가 식당 측으로부터 조용히 하라는 제지를 당했어. 좀 기분이 나쁘긴 했지만 알고 보니 그 식당의 운영 컨셉이야. 거긴 테이블도 거의 없고 바 형식의 테이블로 되어 있어. 계산도 무인 시스템이고. 그곳 테이블에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조용히 해줄 것을 공지해 두었더라고. 혼밥족을 위한 배려인가 봐. 그래서 조용한 식당 분위기 덕에 먹을 때에도 조심조심 눈치 보며 먹었어. 개인적으로 그런 문화는 존중하지만 그 뒤로 그 식당엔 다시 가지 않았어. 그냥 나랑 안 맞아.


‘부버의 나-너 철학’이라는 게 있어. 진정한 ‘너’를 만나려면 먼저 ‘나’를 알아야 한대. 그런데 나를 알려면? 나와 시간을 보내야지. 우리는 모든 사람을 알려고 하면서 정작 자신은 모르고 살아.


아빠 아는 선배가 은퇴하면서 한 말이 잊히지 않아. “30년 동안 단 하루도 혼자 있어본 적이 없어. 은퇴하니까 혼자서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할지 모르겠어.” 섬뜩하지 않니?


사르트르가 “지옥이란 다른 사람들이다”라고 했잖아. 극단적이긴 한데, 일리는 있어. 항상 타인의 시선, 기대, 평가 속에서 사는 게 지옥일 수 있어. 최근에 유튜브 압축 버전으로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드라마를 봤는데 딱 그런 내용이야. 좀 잔인하고 엽기적이긴 했지만.


그런데 조심해야 할 것도 있어. 혼자 시간이 도피가 되면 안 돼. 현실이 싫어서 혼자 있는 거랑, 나를 위해 혼자 있는 건 달라. 다시 말하지만 전자는 외로움이고, 후자는 고독이야.


릴케가 젊은 시인에게 쓴 편지에 이런 구절이 있어. “고독을 사랑하라. 고독이 고통스럽더라도. 그 고통 자체가 당신이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다.”


딸아, 너는 혼자 있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FOMO(Fear Of Missing Out) 말고 JOMO(Joy Of Missing Out)을 느끼길. 모든 파티에 갈 필요 없고, 모든 사람과 친할 필요 없어.


가장 중요한 관계는 너와 너 자신과의 관계야. 그 관계가 건강해야 다른 모든 관계도 건강해질 수 있어.


매일 5분이라도 좋아. 너만의 시간을 가져. 그 시간에 너는 누구의 딸도, 학생도, 친구도 아닌, 그냥 ‘너’ 일 수 있어. 그게 얼마나 소중한지, 아빠는 50년이 다 되어서야 알았어. 너는 좀 더 일찍 알았으면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