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나의 가치 찾기
몇 해 전에 아빠가 에세이 공모전에 나갔다가 1차 탈락했어.
후배가 위로한답시고 "형님 에세이는 원래 별로잖아요. 자기 계발 쪽이 더 낫지"라고 했을 때,
집에 와서 컴퓨터를 켜고 "에세이 잘 쓰는 법'을 검색했어.
근데 한참 검색을 둘러보다가 멈췄어. 스스로도 좀 한심한 거야.
그런 잘 쓰는 법을 따라 해서 잘 쓰게 되면 그게 에세이겠어?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었지.
'내가 정말 에세이를 잘 쓰고 싶은가,
아니면 그냥 후배 말에 자존심 상해서인가?'
후자였어.
예일대 심리학과에서 흥미로운 실험을 했어.
똑같은 와인을 두 그룹에 줬는데,
한 그룹에는 "전문가 평점 95점"이라고 하고, 다른 그룹에는 평점 없이 줬어.
결과? 95점 그룹의 만족도가 50% 높았대.
와인은 똑같은데 '평가'가 맛을 바꾼 거야.
우리도 마찬가지야. 누군가 "넌 참 성실해"라고 하면 갑자기 성실한 사람이 된 것 같고,
"너는 창의성이 부족해"라고 하면 진짜 그런 것 같고.
남의 평가가 우리의 현실을 만들어버리는 거지.
아빠 대학 동기 중에 변호사가 있어. 사법고시 7번 떨어졌대.
매번 "적성에 안 맞는다" "포기하라"는 소리 들었지.
가족들도 "다른 길 찾아보자"라고 했고. 8번째 붙었어.
지금은 아주 유능한 인권 변호사야. 정말 멋있어.
7번의 '불합격' 평가가 그의 가치를 정했을까?
페이스북 '좋아요' 중독이라는 게 있잖아.
사진 올리고 5분마다 확인하는 거.
100개 받으면 행복하고 10개면 우울하고.
근데 그 '좋아요' 누른 사람들이 너를 정말 알까?
그냥 스크롤하다가 0.3초 만에 누른 거야. 사실 나도 그러거든.
스티븐 스필버그가 영화학교 세 번 떨어졌다는 거 아니?
USC, UCLA 다 떨어졌어. 면접관들이 "재능이 없다"라고 했대.
그가 만약 그 평가를 받아들였다면? '쥬라기 공원'도 'ET'도 없었겠지.
더 웃긴 예가 있어. 비틀즈가 데카 레코드 오디션에서 떨어졌어.
"기타 그룹은 유행이 지났다"면서.
해리포터는 출판사 12 군데서 거절당했고.
그때 편집자들의 평가가 옳았을까?
아빠 아는 사람 중에 요리사가 있어.
미슐랭 평가 때문에 노이로제 걸려서 정신과 다녔대.
별 하나 받으려고 10년을 바쳤는데, 어느 날 깨달았대.
"내가 프랑스 평론가 입맛에 맞추려고 요리를 시작한 게 아닌데?"
'가스라이팅'이라는 말 있잖아. 타인이 너의 현실 인식을 조작하는 거.
그런데 우리가 스스로에게 하는 가스라이팅도 있어.
남의 평가를 내면화해서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라고 믿어버리는 거.
하버드 경영대학원 에이미 커디 교수라고 있어. TED 강연으로 유명하지.
교통사고로 뇌손상 입고 IQ가 30 떨어졌대.
의사들이 "대학 졸업 못할 것"이라고 했어. 지도교수도 "그만두는 게 좋겠다"라고. 근
데 지금? 하버드 교수야. 남의 평가를 자기 한계로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지.
'던바의 수'라는 게 있어. 인간이 의미 있는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한계가 150명이래.
그런데 우리는? SNS로 수천, 수만 명의 평가를 신경 써.
내 삶에 아무 영향도 없는 사람들 의견에 흔들리는 거야.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이런 말했어.
"모두를 만족시키려 하면 결국 아무도 만족시킬 수 없다."
아빠는 이렇게 바꾸고 싶어.
"모든 평가를 신경 쓰면 결국 나 자신을 잃어버린다."
너 알아? 올림픽 심사위원들도 40% 정도는 주관적 판단이래.
피겨스케이팅 같은 경우는 더해. 같은 연기인데 심사위원마다 점수가 달라.
그럼 누가 맞는 거야? 다 맞고 다 틀려. 평가는 그런 거야.
링크드인 창업자 리드 호프만이 재미있는 말을 했어.
"당신이 생각하는 당신, 남들이 생각하는 당신, 진짜 당신. 이 세 개는 다 달라."
그럼 뭘 믿어야 할까? 아무것도 믿지 마. 그냥 계속 변하는 거니까.
코미디언 김숙이 한 말이 인상적이었어.
"20년 무명일 때는 '재능 없다'는 평가만 받았는데,
뜨고 나니 '천재'래요.
제가 변한 게 아니라 보는 눈이 변한 거죠."
그리스 철학자 에픽테토스가 이렇게 말했어.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일 자체가 아니라 그것에 대한 우리의 의견이다."
2000년 전 말인데 SNS 시대에 더 맞는 것 같아.
진짜 나의 가치는 뭘까? 아빠도 아직 다 모르겠어.
하지만 이것만은 확실해.
상사의 평가서에도, 연봉 명세서에도, 인스타 팔로워 수에도 없어.
네가 새벽 3시에 친구 전화받고 달려가주는 것,
길고양이한테 밥 주는 것,
혼자 있을 때도 정직한 것.
이런 게 진짜 가치 아닐까? 아무도 평가 안 하고, 점수 안 매기는 것들.
타인의 평가는 날씨 같은 거야. 맑을 때도 있고 흐릴 때도 있어.
그걸로 네 가치가 바뀌는 게 아니야.
비 온다고 해가 사라진 게 아니잖아. 구름 뒤에 있을 뿐이지.
딸아, 네가 누구의 평가도 필요 없는 사람이 되길 바래.
아니, 이미 그런 사람이야. 단지 아직 모를 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