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네가 특별하지 않을 수도 있어

평범함의 가치와 현실적 기대치

by 강훈

딸아, 네가 TV를 보면서 했던 말이 생각나. 어떤 연예인이 해외에 나가서 촬영을 하고 즐겁고 행복한 모습, 그리고 너무 신나게 즐기는 모습을 보면서 배우가 되면 좋겠다고 했던 말. 그래서 아빠가 왜 배우가 되고 싶냐고 물었었지. 그때 네가 말했어.

"유명해지면 좋잖아? 돈도 많이 벌고, 인기도 많고, 사람들이 좋아해 주잖아."

아빠도 한때는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었어. 신문에 나올 만한 사람, 위인전에 실릴 만한 사람. 그래서 더 열심히 살았지. 그리고 나름대로 기독교 사회에서는 어느 정도 그런 사람이 되기도 했잖아. 신문에 나기도 하고, 유튜브나 포털에서 이름을 검색하면 나오기도 하고. 아빠가 만든 노래를 사람들이 부르기도 하잖아.

그런데 50년을 살아보니 깨달았어. 내가 뭔가 하고 있는 일들이 나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었어. 미국으로 이민을 오면서 그동안 했던 일들을 다 정리했잖아. 그리고 어떻게 바뀐 줄 아니? 아빠 카톡에 친구가 3000명이 넘었는데, 그중에서 연락이 오는 사람은 10명도 안되더라. 그렇게 연락이 오지 않고 사람들에게 잊혀서 힘들다는 말을 하고픈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난 그냥 여전히 잘 살고 있더라고. 오히려 더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더라.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부분 평범하게 살다 가. 그리고 그게 잘못된 게 아니더라.


우리 동네 도넛집 아저씨가 있어. 대부분 미국의 도넛 가게가 비슷한 상황이거든.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서 도넛을 만들지. 거기 사장님은 유명하지도 않고,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니야. 그런데 그분이 만든 도넛으로 우리 동네 사람들이 아침을 시작해. 특별하지 않지만 꼭 필요한 사람이지.


아빠 고등학교 동창이 자그마치 500명이야. 그땐 한 반에 50명이 넘었는데 반이 열 개나 있었어. 근데 그중에 정말 ‘특별한’ 삶을 사는 친구는 몇 명일까? 열 명도 채 안 될걸? 나머지는 다 평범한 회사원, 평범한 자영업자, 평범한 부모로 살아. 그런데 동창들 소식을 들어보면 다들 나름 행복해 보여. 평범한 행복도 행복이더라. 오히려 아빠 친구 중에 국회 의원인 친구가 있는데 힘들어 보이더라고. 물론 요즘은 어떻게 지내는지 개인적으로는 알기도 힘들지만.


네가 어릴 때 “우리 딸은 천재인 것 같아”라고 엄마랑 얘기했던 기억이 나. 말 좀 일찍 했다고, 그림 좀 잘 그렸다고. 모든 부모가 그런 착각을 해. 내 아이는 특별하다고. 그런데 학교 가보면 다 비슷비슷해. 그게 실망스러운 게 아니라 자연스러운 거야. 물론 넌 여전히 탁월한 면이 많아. 그리고 솔직히 아빠에겐 뭘 해도, 어떤 영역이든 딸이 최고긴 하지. 그래서 아빠인거지.


인스타그램 보면 다들 특별해 보이지? 세계여행 다니고, 멋진 카페 차리고, 책도 내고. 그런데 그건 특별한 순간만 모아놓은 거야. 그 사람들도 대부분의 시간은 평범하게 보내. 밥 먹고, 잠자고, 넷플릭스 보고.


통계적으로 상위 1%가 되려면 100명 중 1등을 해야 해. 우리나라 인구가 5000만이니까, 각 분야 최고가 되려면 50만 명을 이겨야 해.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그런데 상위 50%면? 두 명 중 한 명이야. 그것도 충분히 괜찮지 않을까? 물론 1등을 하면 안 된다는 말은 아니야. 최선을 다하는 것과 1등을 하는 것은 분명히 달라. 1등이 아니라고, 1%가 아니라고 우리의 최선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지.


할머니가 자주 하는 말 있잖아. “남들처럼만 살아도 성공이야.” 처음엔 그게 무슨 성공이냐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알겠어. 평범하게 살기도 쉽지 않더라. 매일 일어나서 학교 가고, 일하고, 가족 챙기고. 이것도 대단한 거야. 더 나아가서 정말 위대한 일이야.


네가 저번에 “난 왜 특별하게 잘하는 게 없을까?“라고 물었지. 아빠도 그런 생각 많이 했어. 그런데 있잖아, 네가 친구 고민 들어주는 거, 교회에서 반주하는 거, 병원에서 자원봉사 하는 거, 고양이 밥 주는 거, 동생 숙제 도와주는 거. 이런 게 다 네 특별함이야. 화려하지 않을 뿐이지.


우리나라에서 의사가 몇 명인지 아니? 10만 명 정도야. 0.2%지. 그럼 나머지 99.8%는 실패한 인생일까? 아니잖아.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역할을 하며 사는 거지.


아빠가 최근에 읽은 책에 이런 구절이 있었어.

“특별해지려고 애쓰지 마라. 네가 이미 유일하다.”

맞는 말이야. 똑같은 평범한 회사원이어도 나는 나고, 너는 너야. 그 자체로 특별한 거지.


어제 저녁 먹으면서 네가 한 말이 계속 생각나. “그냥 보통으로 살면 안 되나요?” 되지, 당연히 되지. 아빠도 엄마도 보통 사람이야. 그런데 우리 나름대로 행복하잖아. 가끔 치킨 시켜 먹고, 주말에 영화 보고, 여름휴가 때 바다 가고. 그리고 이런 보통의 일상도 누군가에겐 특별한 영역이기도 해.


탑 스타인 연예인들이 주로 하는 말들이 있어. 그냥 동네 마트에 가서 장 보는 것, 식당에서 편하게 밥 먹는 것, 선글라스 마스크를 하지 않고 산책하고 조깅하는 것이 가장 해보고 싶은 것이라고. 특별함에도 대가가 있는 거야. 평범하다는 건 실패가 아니야. 선택이야.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놀고, 적당히 사랑하며 사는 것. 그게 대부분 사람들의 삶이고, 그게 나쁜 게 아니야.


네가 아이비리그 대학에 가거나 유명한 사람이 되면 아빠는 당연하게 자랑스러울 거야. 그런데 네가 그냥 동네 작은 꽃집을 운영해도 아빠는 똑같이 자랑스러울 거야. 왜냐하면 너는 너니까. 내 딸이니까. 네가 특별한 이유는 어떤 일을 이루어 내서 얻은 업적이 아니야. 네가 존재해서 특별한 거야. 무엇을 하느냐도 중요하지만 그 일을 어떻게, 왜 하느냐도 너무 중요해.


며칠 전 네가 피아노 치는 걸 들었어. 탁월한 연주자도 아니고, 그냥 네가 좋아하는 노래였지. 그런데 아빠는 그 연주가 더 좋았어. 상을 받기 위한 연주가 아니라, 그냥 네가 좋아서 치는 연주였으니까.

특별하지 않아도 돼. 평범해도 충분해. 중요한 건 네가 네 삶에 만족하는 거야. 남들 눈에 특별해 보이는 것보다, 네 마음에 평화로운 게 더 중요해.


오늘 아침에 네가 학교 가면서 “오늘도 평범한 하루가 되겠지?“라고 했지. 맞아, 아마 평범한 하루일 거야. 그런데 그 평범한 하루들이 모여서 네 인생이 되는 거야. 그리고 그게 충분히 아름다운 인생이 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