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 2 – 열등감도 스펙이 된다

by 강훈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고린도전서 1:27)


어떤 날은 길에서 스쳐 간 한 장면이 오래 남는다. 누군가의 발표가 유난히 매끄럽고, 또 다른 누군가의 노래가 마음을 훅 파고들 때, 가슴속 어디선가 작은 바늘이 콕 찌른다. 나는 왜 저만큼 못할까. 그 바늘의 이름이 열등감이다. 듣기만 해도 기가 죽는 단어지만, 가만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또 다른 문장이 숨어 있다.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 열등감의 첫음절은 ‘덜함’이지만 끝 음절에는 은근한 갈망이 들어 있다.


심리학자 캐럴 드웩은 능력을 고정된 덩어리로 보지 않고 자라날 수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을 ‘성장 마인드셋’이라고 했다. 그럴 때, 사람은 더 오래 시도하고 덜 무너진다. 부족함을 ‘끝’으로 읽지 않고 ‘아직’으로 읽는 태도다.

또 다른 심리학자 히긴스는 ‘지금의 나’와 ‘되고 싶은 나’ 사이의 거리가 우리 마음을 아프게도, 움직이게도 만든다고 설명했다. 그렇다. 열등감은 때로 상처지만, 방향을 가리키는 지도가 되기도 한다. 내 마음이 지금 무엇을 사랑하는지 보여주는 그런 지도 말이다.


믿음의 눈으로 보면, 이 이야기는 더 분명해진다. 하나님은 종종 약함을 통로로 삼으신다. 질그릇 같은 우리에게 보배를 담으신 까닭은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고린도후서 4:7)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은 “내가 약한 그때에 강함이라”(고린도후서 12:10)고 고백했다. 부족이 사라졌기 때문이 아니라, 부족이 자랑거리가 될 만큼 은혜가 가까이 왔기 때문이다. 이 믿음이 마음에 앉으면, 열등감은 나를 누르는 돌이 아니라 무릎 꿇어 기도하게 하는 힘이 된다.


물론 우리 곁에는 이른바 ‘사기캐’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노래도, 외모도, 스펙도 훌륭한 이들. 그런데 그들 역시 다른 장르 앞에서는 초보자다. 아무리 유려한 목소리도 처음 피아노 앞에서는 도레미부터 배운다. 그러니 '나는 원래 안 돼'라는 열등감의 유혹이 속삭일 때, 우리는 이렇게 되받아칠 수 있다. 나는 아직 시작하지 않았을 뿐이야. 시작은 겸손이고, 겸손은 자존감을 깎지 않는다. 오히려 단단하게 한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수용하기에, 배우고 고칠 용기도 생긴다.


돌이켜보면, 열등감은 나를 두 갈래로 이끌었다. 하나는 수치의 길이다. 숨고 비교하고 멈추게 한다. 다른 하나는 성장의 길이다. 사랑하는 것을 향해 작은 걸음을 떼게 한다. 두 길의 갈림은 신기하게도 아주 작은 언어에서 갈린다. “나는 못해” 대신 “나는 아직”이라고 말할 때, 마음은 닫히지 않고 열린다. “왜 나는…” 대신 “무엇을 배우고 싶지?”라고 묻는 순간, 열등감은 커리큘럼이 된다. 오늘의 10분 복습, 내일의 한 번 더 시도, 화려한 스펙 대신, 꾸준함과 성실, 공감 같은 보이지 않는 스펙이 쌓인다. 약한 자리에서 시작한 사람은, 비슷한 자리에 선 사람을 더 따뜻하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앙은 여기에 마지막 문장을 더한다. 우리는 ‘해내서 사랑받는 존재’가 아니라, ‘사랑받기에 해낼 수 있는 존재’다. 이 순서를 잊지 않을 때, 열등감은 더 이상 나를 규정하지 못한다.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 소명을 밝히는 등불이 된다. 나는 무엇을 사랑하길래 이렇게 아픈가? 그 답을 따라가며 조금씩 배우고, 넘어지면 다시 일어난다. 넘어지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넘어져도 다시 걷는 사람, 그게 신앙이 빚는 자존감이다.


오늘 마음이 콕 찔렸다면, 결론을 서두르지 않아도 좋다. 그 아픔을 잠시 손에 쥐고 이렇게만 속삭여 보자. 괜찮아. 이건 내게 주어진 ‘아직’이야. 그리고 하나님은 약한 자리도 일의 시작으로 삼으시는 분이야. 그러면 열등감은 스펙으로 바뀐다. 남에게 내보이는 화려한 항목이 아니라, 하나님께 들고 갈 충실의 이력. 오늘의 작은 진전 하나, 내일의 한 번 더, 그 꾸준함이 쌓일수록, 우리는 조금 덜 비교하고 조금 더 자신답게 일어선다. 그리고 언젠가 깨닫게 된다. 부족이 사라져서가 아니라, 부족을 안고도 사랑받기에, 나는 이미 충분히 시작할 자격이 있었다는 것을.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때에 강함이라"(고린도후서 1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