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 5 - 속옷은 속에 입는 옷이다

by 강훈

“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조용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베드로전서 3:3–4)


슈퍼맨이 처음 세상에 등장했을 때, 모두가 한 번쯤 놀랐다. 저 멋진 영웅, 근데… 속옷을 왜 겉에? 농담처럼 시작하지만, 나는 가끔 거기서 우리 마음의 습관을 본다. 속에 있어야 할 것을 겉으로 끌어올려 증명하고 싶은 마음. 보이지 않는 자존감을 보이게 하고 싶은 유혹.


한 번은 미국 출장을 갔다가 ‘빅토리아 시크릿’ 매장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커다란 매장, 북적이는 사람들, 커플들이 웃으며 고르고 맞춰 보는 풍경. 속옷은 말 그대로 속에 입는 옷인데, 왜 이렇게 열광적일까. 한국의 광고들을 떠올려 보니 남녀 할 것 없이 속옷이 곧 자기 증명처럼 포장되곤 했다. 로고가 큼지막이 박힌 밴드, 힙합이 유행하던 시절 일부러 바지를 내려 브랜드를 드러내던 장면들. 어느 순간부터 속옷은 피부를 감싸는 천이 아니라, 나는 이런 사람이라는 간판이 되었다.


심리학은 이 마음의 메커니즘을 오래전부터 관찰해 왔다. 사회심리학자 로버트 윅룬드(Robert A. Wicklund)와 피터 골비처(Peter M. Gollwitzer)는 ‘상징적 자기완성이론’에서 우리가 어떤 정체성이 불안할수록 그 정체성을 상징하는 기호에 더 매달린다고 했다. 내 안에서 ‘괜찮은 나’가 흔들릴수록, 겉으로 ‘괜찮아 보이는 나’를 더 공들여 만든다. 멋진 로고, 비싼 원단, 명품 브랜드, 남의 시선은 순식간에 자존감의 대체재가 된다. 문제는 그 대체재가 오래 버티지 못한다는 것이다. 어제의 설렘은 오늘의 익숙함이 되고, 우리는 더 큰 로고를, 더 비싼 무언가를 찾는다.


신앙은 우리를 더 조용한 방으로 데려간다.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주님은 중심을 보신다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사무엘상 16:7).


성경은 또 이렇게 초대한다. “겉모양의 단장이 아니라 마음에 숨은 사람을” 입으라고(베드로전서 3:3–4). 이 말은 외모를 소홀히 하라는 꾸중이 아니다. 잘 맞는 속옷이 하루의 컨디션을 지켜 주듯, 내면의 옷은 삶의 품격을 지켜 준다. 다만 순서를 바꾸지 말자는 것이다. 속옷이 밖으로 나오면 어색해지듯, 밖에서 손에 쥔 로고들로 안의 가치를 대신하려 들면, 마음은 금세 추워진다.


아침에 옷장을 열며 나도 모르게 이런 질문을 해 본다. 오늘 나는 무엇을 먼저 입고 있나. 골로새서의 구절이 옷걸이처럼 떠오른다.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골로새서 3:12–14)


마음의 서랍에서 꺼내야 할 속옷은 어쩌면 이런 것들 일지 모른다. 보이지 않지만 하루 종일 닿아 있는 친절, 밖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관계를 편안하게 해 주는 온유, 쉽게 늘어나지 않는 신뢰의 밴드. 이런 속옷은 유행이 없고, 사이즈가 달라도 서로를 편하게 한다.


물론 멋을 낼 날이 있다. 특별한 날, 특별한 마음으로 고르고 입는 멋진 속옷처럼, 우리는 때로 외적인 장식이 주는 기쁨도 누린다. 그 자체가 죄일 리 없다. 다만 기억하고 싶다. 그 기쁨이 내 가치를 증명하는 증거는 아니라는 것을. 그걸로 좋아질 정도면, 그게 없다고 무너지지는 않는다. 우리의 가치는 겉에 붙는 라벨이 아니라, 우리에게 먼저 붙어 온 이름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너는 내 사랑하는 자녀라.”(마가복음 1:11)


이 이름이 마음의 살에 닿아 있을 때, 표면적 장식은 자리를 지키고, 속의 옷이 제 역할을 한다.


나는 요즘, 속옷을 사러 갈 때 작은 의식을 치른다. 손끝으로 촉감을 먼저 본다. 오래 입어도 피부에 자국을 남기지 않을 것, 하루를 다녀와도 답답함이 남지 않을 것. 그리고 속으로 짧게 기도한다. 주님, 오늘도 속에 입는 옷을 먼저 입게 하소서. 보이지 않아도 당신 앞에 진짜 필요한 것들, 바로 자비와 절제와 사랑을 제 마음에 먼저 대게 하소서. 그러고 나면 신기하게 겉옷도 조금 더 편안하게 어울린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보이지 않는 것들이 진짜 오래간다. 숨은 친절이 관계를 지키고, 조용한 기도가 방향을 바꾸고, 드러내지 않은 양보가 공동체를 부드럽게 만든다. 속옷이 그렇듯, 누구도 알아채지 못해도 내내 몸에 닿아 있는 것들이 하루를 지탱한다.

그래서 속은 단단히, 겉은 가볍게. 먼저 사랑받는 자라는 사실을 품고, 그다음에 나답게 멋을 더하면 된다.


밤이 되어 옷을 갈아입을 때, 문득 이런 기도가 올라온다.
주님, 겉에 붙인 이름표보다 먼저, 제 마음의 옷깃을 살펴보게 하소서. 보이지 않는 것을 소중히 여기게 하소서. 결국 그 옷이, 제 하루를 가장 따뜻하게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