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잠언 24:16)
지인이 마카롱을 맛있게 만들었다. 쿠킹에 관심이 많던 나는 그가 말한 쉽다는 말에 솔깃해, 나도 부엌에 전장을 펼쳤다. 커다란 볼에 계란흰자로 머랭을 올리고, 아몬드 가루를 체에 내리고, 색다른 맛과 향을 주기 위해서 유자크림 필링을 만들었다. 오븐을 예열하는 동안 유튜브의 마카롱 만들기 영상은 일시정지와 재생을 수십 번 오갔다. 오븐에서 트레이를 꺼내던 순간, 달콤한 향과 함께 현실도 나왔다. 반듯해야 할 둥근 껍질인 꼬끄는 어딘가는 갈라지고 어딘가는 터져서 엉망이 되었다. 분명히 맛은 같은데, 모양도 엉망이고 식감은 다른, 그런 녀석들이었다. 자고로 마카롱의 기쁨이란, 이가 닿는 첫 순간의 폭신함과 바삭함이 동시에 느껴졌다가, 크림이 닿기 직전 아주 살짝 끈적임이 스쳐 지나가고, 유자 크림향이 마지막에 톡 하고 터지는 그 한순간인데… 언제나 그 “딱 그만큼”이 늘 어렵다. 삶의 많은 영역에서도 그렇듯이.
그날 깨달은 건, 실패가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과정의 문법이라는 사실이었다. 잘 만든 마카롱 한 알은, 보이지 않는 수많은 깨진 껍질들을 전제로 존재한다. 제과 명장에게도 오븐의 기분 나쁜 날이 있고, 완벽한 레시피에도 덩어리가 생기는 순간이 있다. 흙으로 그릇을 빚다 무너지면 다시 이겨 더 좋은 모양으로 만드는 그 장면처럼 말이다.
"진흙으로 만든 그릇이 토기장이의 손에서 터지매
그가 그것으로 자기 의견에 좋은 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더라"(예레미야 18:4).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다루실 때도 종종 그렇게 하신다. 깨진 것을 창피로 끝내지 않고, 재형성의 출발점으로 삼으신다.
심리학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로버트 비요크(Robert A. Bjork)는 학습의 초기 과정에서 일부러 마찰을 만드는 ‘바람직한 어려움(Desirable Difficulties)’이 장기 기억과 응용을 더 깊게 한다고 말한다. 매끄럽게만 흘러간 연습보다, 중간중간 걸리고 빗나간 시도가 더 오래 남는다는 뜻이다. 마카롱의 균열처럼 보였던 실패들이, 사실은 나의 감각을 정밀하게 세팅해 주고 있었던 셈이다. 신앙의 언어로 바꾸면 이렇다.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알미로다.”(로마서 5:3–4)
돌이켜 보면, 내 마음속의 판사는 실패 앞에서 늘 성급했다.
'못했으니 그만둬라.'
하지만 성경은 다르게 말한다. 넘어진다고 아주 엎드러지는 게 아니다. 하나님의 손이 붙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시편 37:24).
그 손을 신뢰하면, 실패는 내 존재를 부정하는 증거가 아니라 다시 시도하라는 초대장이 된다. 기쁨은 결과의 감탄사가 아니라, 과정의 태도라는. 무모하지만 아름다운 권면처럼 말이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야고보서 1:2–3).
그때 사진 찍어 놓은 금이 간 마카롱 사진을 보며 브런치 글쓰기를 떠올렸다. 둘러보니 “아름답고 맛난 글”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지, 부끄러움이 먼저 달려왔다. 나는 그런 글맛을 낼 실력이 있을까? 그러다 고개를 들었다. 나의 글쓰기는 데뷔와 명성보다, 내 얘기를 진실하게 꺼내어 누군가에게 힘이 되는 것이 목적이었다는 걸 다시 확인했다. 그러니 오늘의 문장 틈에 공기가 샌다 해도 괜찮다. 지금 내 손에 들린 이 깨진 문장들이 내일의 탄력 있는 문장을 향해 가는 길이라면 말이다.
실패를 바라보는 법은 어쩌면 아주 단순하다. 넘어졌다는 사실보다 먼저, 일어나기로 한 나를 본다.
깨진 겉모양에 머무르기보다, 그 속에서 자라난 감각과 분별을 본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로마서 5:3–4).
그리고 무엇보다, 오늘의 글쓰기 재료들 - 시간, 정성, 잠깐의 용기 - 를 다시 새겨 본다.
유자 향이 톡 하고 터지던 그 순간을 잊지 않으려 한다. 완벽한 그날만이 기쁨이 아니라, 익어 가는 과정 자체가 주시는 기쁨이라는 것을. 오늘은 한 번 더 섞고, 한 번 더 구워 보고, 한 줄 더 써 본다. 그리고 조용히 기도한다.
주님, 실패를 부끄러움이 아니라 재형성의 자리로 보게 하소서.
넘어지되, 다시 일어나게 하소서.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잠언 2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