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주도 1 - 걱정도 땡겨 쓰니?

by 강훈

"그런즉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마태복음 6:34)


카드를 처음 쥐었을 때, 나는 마치 지갑 안에 작은 도깨비방망이를 품은 줄 알았다. 긁으면 원하는 것이 손에 들어왔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이번 달만, 이 한 번만’ 하며 당겨 쓴 값은 이자에 이자를 얹어 조용히 불어났다. 결국 돌려 막기와 함께 신용이 무너졌고, 회복을 위해서는 정작 카드 쓰는 데 들었던 시간보다 훨씬 긴 계절이 필요했다. 그때 알았다. 당겨 쓰는 건 달콤하지만, 갚는 건 쓰다. 그리고 걱정도 그렇다는 것을.


우리는 보이지 않는 한도를 가진 ‘걱정 카드’를 지닌다. 유치원 때부터 대입을, 입사하기도 전에 정년퇴직을, 첫 만남에서 이별을, 출발선에서 결승선을 당겨 와 마음에 긁는다. 심리학은 이런 습관을 "예기불안"이라 부른다. 특히 ‘불확실성을 견디기 어려운 마음’에서 걱정이 증식한다고 말한다. 미래를 선지급해 마음에 과금하는 셈이다. 그런데 내일의 고지서가 오늘의 호흡을 꺾는다면, 그건 이미 손해다.


예수님은 아주 단순하게 말했다.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그래서 오늘이라는 좁은 식탁에 앉아, 오늘의 빵과 오늘의 은혜를 먼저 씹어 삼키라고 했다(마태복음 6:34).

바울도 덧붙인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립보서 4:6–7)

내일의 계산서를 미리 당겨 쥐고 밤새 계산하지 말고, 오늘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 올려 드리라는 초대다.


물론 어느 정도의 걱정은 우리를 준비시키고 깨어 있게 한다. 그러나 걱정이 계획을 밀어 올리는 순간을 지나 존재 자체를 압박하기 시작한다면, 방향을 바꿔야 한다. 카드 한도를 늘리는 대신, 오늘의 경계를 세우는 쪽으로.


나는 빚으로 무너졌을 때를 떠올리며, 마음의 회계도 그렇게 정리해 본다.
오늘 반드시 지불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하루의 성실, 약속, 작은 친절)
오늘 미룰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상상 속 재난 시나리오, ‘만약’의 가지치기)
지금 바로 맡길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


신앙은 현실도피가 아니다. 오히려 근거 있는 ‘맡김’이다. 내가 쥐고 있을수록 더 흐려지는 것들을 하나둘 내려놓고, 오늘 내게 주어진 몫 - 기도할 것, 전화 한 통 걸 것, 해야 할 일을 한 단락 더 이어갈 것 - 을 걸어간다. 그것이 걱정을 땡겨 쓰지 않는 삶이다. 내일의 해는 내가 당겨 올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때가 되면 떠오르게 하시는 빛이니까.


오늘 밤, 침대에 누워 내일을 긁어대고 싶을 때 이렇게만 중얼거려 보자.
“주님, 내일은 주님의 몫, 오늘은 제 몫입니다. 제 몫을 하게 도와주세요.”
그리고 등을 돌려 누워 숨을 길게 내쉬자. 내일의 고지서는 우편함에 그대로 두고, 오늘의 마음만 조용히 결제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