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이사야 42:3)
마흔의 어느 날, 재미 삼아 클릭했던 온라인 자존감 테스트가 숫자로 나를 규정해 버렸다. 100점 만점에 23점. 화면을 닫는 순간, 점수보다 마음이 먼저 꺼졌다. 하지만 돌아보면 그 결과가 그리 놀랄 일도 아니었다. 기억도 없는 어린 시절의 화상, 집을 떠난 엄마, 종이처럼 얇아진 살림살이, 자주 바뀌던 보호자의 얼굴들,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서 은근히 느껴지던 ‘거리 두기’. 그런 풍경 속에서 자존감이 저절로 자라났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했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내 이야기는 “그래서 나는 평생 낮다”로 끝나지 않는다. 자존감은 기질의 선물이 아니라 관계와 시간 속에서 자라나는 결실이기 때문이다.
심리학자 캐럴 드웩(Carol Susan Dweck)은 이를 "성장 마인드셋"이라 불렀다. 타고난 고정값이 아니라, 넘어짐과 학습을 반복하며 서서히 변하는 능력이라는 뜻이다. 회복탄력성 연구자 앤 매스턴(Ann S. Masten)은 일상의 보호요인을 “평범한 기적(ordinary magic)”이라 불렀다. 완벽한 조건이 아니라, 누군가의 따뜻한 시선과 작은 지지가 아이를 붙들어 준다는 사실 때문이다. 내게 그 평범한 기적은 할머니의 손, 멀리서 묵묵히 응원해 준 작은아버지의 목소리, 그리고 때때로 만난 이름 모를 친절들이었다. 그 작은 등불들이 내 안에서 꺼져가던 불씨를 몇 번이고 살려냈다.
신앙은 여기에 더 깊은 토대를 깐다. 성경의 하나님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으신다(사 42:3). 이는 연약함을 미화하자는 말이 아니다. 연약함 때문에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성품에 기대라는 초대다.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밤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숫자로 부르지 않고 이름으로 부르신다.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사 43:1).
그 부르심 안에서 우리는 조금씩 배운다. 나를 판단하던 잣대를 내려놓고, 진실은 직면하되 존재는 깎지 않는 법을.
솔직히 말하면, 나는 자존감 회복을 위한 비결 같은 것을 갖고 있지 않다. “이 세 가지를 하면 자존감이 급상승한다”는 도표도 없다. 내가 아는 건 이것뿐이다. 살아냈다는 사실. 다음 날을 향해 한 발 더 내디뎠다는 사실. 그리고 그 한 걸음을 가능케 한 건, 결심이나 근성 이전에 “너는 사랑받는 존재야”라고 매일 새롭게 속삭이시는 하나님의 목소리였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애 3:23).
그 음성은 내 실패를 가볍게 여기지 않지만, 실패가 나의 정체가 되도록 내버려 두지도 않는다. 그래서 자존감은 타고난 값이 아니다. 넘어져도 사랑 밖으로 밀려나지 않는다는 확신에서 하루치씩 자란다. 생각해 보면 자존감은 큰 사건이 아니라 작은 선택의 누적에서 생겨났다.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말 대신, “오늘도 여기까지 왔다”를 한 번 더 말하는 선택. 남의 눈치를 읽느라 고개를 떨구는 대신, 하늘의 시선을 떠올리며 등을 펴는 선택. 주어진 하루를 견뎌냈다는 이유만으로, 늦은 밤 내 머리를 살짝 쓰다듬어 주는 선택. 이런 사소한 선택들이 쌓이며 마음 안쪽에 새로운 ‘기준선’이 생겼다. 자존감 테스트 숫자가 올랐다는 의미가 아니라, 나는 더 이상 어제의 점수로 규정되지 않는다는 평안이 자리 잡았다는 뜻이다.
물론 쉬운 길은 아니었다. 낮은 자존감은 종종 가장 친숙한 방처럼 느껴진다. 익숙해서, 도리어 떠나기 어렵다. “내 인생만 꼬였어”라는 문장은 그 방의 문패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알게 됐다. 꼬인 건 인생이 아니라 마음이었다. 창밖에 햇빛이 없어서가 아니라, 커튼을 걷지 않아서 방이 어두웠던 날들이었다. 커튼을 조금만 젖혀도, 방 안으로 빛이 들어와 벽의 색이 달라졌다. 그날부터 매일 조금씩 커튼을 열었다. 어떤 날은 한 뼘, 어떤 날은 손가락 두 마디. 그리고 아주 더딘 속도로, 방이 바뀌었다. 자존감은 그렇게 바뀐다.
당신의 풍경도 각자 다를 것이다. 어린 시절의 상처가 여전히 현재형으로 남아 있을지 모른다. 누군가는 “23점”이라는 숫자 대신 전혀 다른 형태의 낙인을 붙들고 살지도 모른다. 그럴수록 말하고 싶은 문장이 있다. “자존감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더 정확히는, 사랑 안에서 길러지는 것이다. 하나님이 꺾지 않으신 갈대라면, 우리도 스스로를 함부로 꺾지 말자. 하나님이 끄지 않으신 등불이라면, 오늘 당신도 자신의 등불 지기가 되어 주자. 작은 불씨를 가리고 있던 손바닥을 살짝 치우고, 바람을 막아 줄 유리등을 하나 더 씌우고, 새벽마다 내려오는 자비를 기름 삼아 불을 보살피자.
마지막으로, 그 밤 온라인 테스트가 내게 남긴 진짜 선물은 점수가 아니었다. 그 숫자 앞에서 도망치지 않고 앉아 있었던 나를 처음으로 보았다는 사실이었다. 낮은 점수도, 높은 점수도, 어느 쪽도 나를 정의할 수 없다. 나를 정의하는 건 하나님의 시선뿐이다. 그 시선이 내게 말한다.
“너는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음이라”(이사야 43:4).
그러니 오늘은 이렇게만 하자. 어제의 점수에서 눈을 떼고, 오늘의 한 걸음을 선택하자. “나는 작지만 사랑받고, 넘어지지만 다시 일어난다.”
그리고 조용히 기도하자.
"주님, 꺼져가는 등불 같은 저를 오늘도 끄지 않으시니 감사합니다.
제 안의 작은 불씨를 지키도록 지혜와 용기를 주세요.
어제의 점수가 아니라, 당신의 시선으로 저를 보게 해 주세요. 아멘."
자존감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사랑으로 다시 배우는 것이다.
우리의 속도를 아시는 하나님이 끝까지 함께 걸어 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