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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헤다 Apr 20. 2022

모든 것은 추억이 된다.

그땐 그렇게 고통스러웠는데, 지나고보니 추억이 되어 있더라.

 

어렸을 적 사고친 경험이 있는가? 

 누구나 한 번쯤은 원치 않게 사고쳤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아주 흔하게는 무언가를 깨뜨린 그런 것 말이다. 신나게 놀다가 유리창을 깨뜨리고, 엄마가 제일 아끼던 그릇을 깨뜨리고, 성인이 되기 전에 술, 담배 하다가 딱 걸리거나 야동을 보다가 걸린다던가 하는 그런거 말이다.

 물론 어렸을 적의 소소한 일들이어서 말 그대로 애교로 넘겨줄 수 있는 수준의 일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소소한 일들이라고 여기는건 언제인가? 그 당시인가? 아니다. 그 당시, 딱 그 상황에서는 세상 끝날 것 같고 눈 앞이 깜깜해지는 그런 순간이다. 

’아, 이제 난 죽었다.’ 

그 상황에 딱 어울리는 문장이다. 

물론 그 당시에 그 일로 죽거나 큰일나지 않았다. 당연히 혼은 났겠지만 지나고보면 다 추억이다.


살짝 미소가 지어지는 일만 추억은 아니다. 슬픈 일들도 우리에겐 충분하게 추억이 된다. 부모님이나 가까운 친구나 지인이 큰 병에 걸려서 투병을 했던 일도 그렇다. 아주 고통스럽고 힘든 일이었지만 슬픈 추억으로 남아서 우리는 다시 이야기한다. 

심지어 죽음으로 우리와 이별을 한 누군가에 대한 시간들도 다시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가? 장례식장에서 제일 많이 나누는 이야기가 무엇일까? 당연히 고인의 살아 생전의 이야기이다. 슬프지만 지나간 시간의 추억들이 된 것이다.


 난 어렸을 때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내가 8살 때 엄마는 집을 나갔다. 엄마가 없어진걸 알고 펑펑 울던 시간들이 생각나고 엄마 없이 할머니와 함께 자란 시간들도 생각난다. 

할머니에게 담배 피다 걸려서 엄청나게 혼났던 시간들, 아버지란 사람의 학대와 행패부리던 것들이 고스란히 생각이 난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들도 다 추억이다. 그 시간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글쎄...

삶을 선택할 수 있다면 또 경험하고 싶지 않겠지만 말이다. 그것과 상관없이 지금 이 순간 돌아보면 그 또한 추억이다.


 남자들이 제일 많이 이야기하는 추억은 당연 군대이야기이다.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가 여자들이 제일 듣기 싫어한다지만 그걸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남자들은 군대 얘기를 한다. 세대를 무시하고 남자들의 군대이야기는 끝이 없다. 심지어 무용담이 엄청나다. 말만 들어서는 다들 적들을 여럿 무찌른 분위기다. 하지만 다시 군대를 가겠냐고 묻는다면 열이면 열 모두 고개를 가로 젓는다. 힘들었던 시간들을 다시 겪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제대하고 제일 두려운 순간이 군대를 다시 가는 꿈을 꾼 일일까. 그럼에도 남자들이 군대 얘기를 그토록 매번 하는 이유는, 심지어 술마시면 더 심해지는 이유는 다시 가고 싶지 않을 정도의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좋은 것만 추억이 아니라 힘든 터널과 같은 시간이지만 그걸 통과한 이후에 돌아보면 추억이 되는 것이다.


 각자 자신이 살아온 시간들이 있을 것이다. 그 시간들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 더 낫고 덜 낫고 하는건 의미가 없다. 각자에게 모두 기쁜 의미들을 가진 시간도, 슬픈 경험들을 준 시간도 분명하게 존재한다. 어떤 사람은 그 과거의 시간들을 자신의 상처라고 생각한다. 그것 때문에 자신이 더 나아가지 못한다고 말이다. 

어떤 것들은 상처가 될 수 있고, 다른 어떤 것들은 추억이 되는 것일까? 조금만 신중하고 깊이 생각한다면 상처가 될 일들도 추억으로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세상 그 어떤 일도, 내가 살아온 그 어떤 일도, 정말 다시 생각하기 싫은 일도, 

내가 받아들이는 태도에 따라서 상처가 될 수도 있고, 추억이 될 수도 있다.


생각보다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들 중에서 더 마음 깊이 새겨진 추억들은 기쁜 경험보다는 슬픈 경험들이 더 많다. 아련하기도 하고, 그런 시간들을 경험하고 통과한 지금 현재의 내 모습이 대견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모든 과거의 시간들을 추억으로 여길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이 어쩌면 내 인생에서 가장 찬란한 시간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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